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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검고깊은바닥까지

# 불안

 

 

 

 

지금의 애인은 내게 참 잘해준다. 이젠 애인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린 잘 어울리니까!'라는 말이 내 입에서 장난처럼 나오는데,  순간들을 보면 참 신기하고, 그 신기함이 더 없이 즐겁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그 사실을 편안하게 시인할 정도로 안정감을 느끼고 있구나.'를 단번에 느끼게 해주는 그 장난은 언제나 즐거워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처럼 꺄르르 웃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리고 내 불안은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첫사랑을 앓았다. 처음으로 내 세상이 타인으로 인해서 재구성 되어서 온전히 다른 세상에 살아보았고 그 세상이 산산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붕괴는 상대 쪽에서부터 일어났는데 감정이 없는 지겨워하는 눈빛 앞에서 나는 쩔쩔매며 울기만 했다. 그 기간이 너무 길어서 만신창이가 됐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는 ''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라 그저 추측했다. 아마 내가 상대를 너무 좋아한 탓에 이 모든 문제가 생겼을 거라고. 내가 너무 좋아한 탓에 나는 나를 잃고 당신은 나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거라고.

 

 한번, 다시는 한국에 다시는 오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기적 같은 일이었다그런데 어느 날 나를 보며 미래를 이야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낯빛을 바꿨다. 나에게 어떤 해명도 해주지 않았다나와 당신의 공간이 갑자기 타인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당신을 잃은 나는 모두에게 공공연히 매장 당했다. 그리고 끝까지 나는 어떤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당신은 나를 탓했다. "너에게 실망했다." 그 한마디만 내게 남았다나는 빈손으로 그곳을 떠났다. 나를 지키려면 그래야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당신도 그렇게 나를 버릴까 두렵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내 등뒤에서 불행이 습격할 것만 같아서 두렵다. 사랑이 내 애정과 노력에 항상 부응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배운 나는 늘 노력하면서도 무력하다, 그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나라는 것, 원흉인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또 아무도 남지 않으리라는 것이 두렵다.

 

 

게다가 내 예민함과 극단이 날 불편하게 한다.

예민하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과는 다른 반응을 의미하는 것 같다. 다른 것에 매력을 느끼고 같은 것에 반응하지 않는 것. 내 취향도, 내 망상도, 내 연애도. 순간순간 생각한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폭발적인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말한다면 기겁해서 달아나지 않을까? 달아내지 않더라도 지금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예쁘고 사랑스런 눈으로 보아줄까? 어쩌면 나는 내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이'라는 자신이 없나 보다. 

 

불안이 돋으면 나는 예민해진다. 당신을 만나자마자 표정을 살핀다. 여전히 당신의 눈빛이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지, 오늘도 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말하며 입맞춰줄 건지, 그걸 살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감각을 세운다. 조금이라도 다른 당신이 감지되면 그 원인이 피로인지 업무인지 알기 전까지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또 나쁜 버릇이 돌아오려고 한다. 아직 내 몸을 원하면 나를 원하는 게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다다르면 그런 내 자신 너무 불쾌해서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불안을 당신에게 말할 수 없으니 티 내지 않는다.

 

당신이 더 이상 나를 사랑스럽게 봐주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말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차근차근 내 마음을 회수해야 한다. 아프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어쩌면 변한 당신이라도 가지고 싶게 될지 모른다. 그게 두려우니까. 먼저 알아채고 자리를 피해야 한다.

 

나는 매번, 그리고 매일 여전히 당신의 얼굴을, 목소리를 살핀다무엇이 가장 불안하느냐면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내가 너무 불안하다. 이 모든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면서 당신 앞에서 웃고 있는 내가 너무 불안하다. 내가 생각하는 내 불안은 이런 것들.

 

 

 

 

믿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말했듯 지금까지 보여준 당신은 갑자기 변할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일지라도 사랑해주겠다는 그 말들. 불안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팔을 길게 뻗어서 저만큼 밀어낼만큼의 힘을 준다. 그렇게 조금씩 불안을 밀어내면서 시간이 흐르기를 지금은 그것만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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