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을 기억하면 집안 공기가 떠오른다. 계절은 늦 여름이나 가을 즈음 같았고 저녁 시간에 불을 켜지 않은 집안은 어둑어둑 해졌다컴컴하면서도 붉은 기운이 맴돌던 좁은 부엌에서 밖으로 나있는 창을 내다보았다면 타는 듯이 지는 노을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기억 속의 나는 창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나는 노을을 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형광등을 켤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아.


나는 아직 학교에 들어 가지 전이었고, 내 동생은 나보다 어렸다.


엄마가 왜 아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갑자기 쓰러져서는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방에서 앓고 있는 엄마 곁에도 가지 못하고 방문 밖, 부엌에서 겁에 질린 동생과 앉아 있었다. 집이 좁았다. 엄마의 신음 소리만 들리는 어두워진 거실에서 겁도 먹지 못하고 꼼짝 없이 앉아 있으려니 다른 세계라도 온 기분이었다.


옆에 오지 못하게 하던 엄마가 나를 불렀다. 몸이 굳어가다 못해 손가락이 안으로 곱아 갔다. 엄마에 지시에 따라서 주변의 수건과 동생의 천 기저귀를 말아, 엄마에 손에 억지로 쥐였다. 양손으로 간신히 엄마의 곱은 손을 펼치는 게 쉽지 않았다. 침착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울었거나 겁먹었던 기억은 없다. 그냥 엄마의 곱은 손을 펼치는 게 너무 힘에 부쳤다. 다시 한번 숨을 들이키고 침착해지려고 애를 썼다

 

엄마는 구급차를 부를지언정 아빠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명확하지 않은 기억에 고비를 넘기고서야 아빠가 들어왔다. 이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아빠를 보고 안도하지 않았던 것을 확실하다. 아빠는 작은 부엌 창 옆에 있던 현관문으로 들어와서는 평소처럼 행동했다. 구두를 벗고 집으로 들어와서 천천히 넥타이를 끌렀다. 옷을 갈아입는 내내 엄마가 앓는 소리를 하자, 무심하게 "아픈 티 내지 말라."고 말했고, 엄마는 대답도 없이 앓았다.

 

아빠는 앓아 누운 엄마가 보기 싫었는지 저녁도 먹지 않고 나갔다. 아빠가 다녀간 집에는 형광등이 켜져 있었을 뿐 달라진 게 없었다


그냥, 혼자서 열이 심해서 잠이 들도 또 잠이 들다가, 문득 그 때 생각이 났다. 


어쩌면 내가 자주 그리고 또 많이 아플 때 엄마가 내게 보인 행동들은 저 모든 일이 마음에 남아서 생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한 집에 살 때,  아픈 내게 짜증과 화를 냈던 엄마와  결국은 엄마가 있는 집에 친구가 와서 죽을 끓여줬던 기묘한 일을 나는 기억한다. 이 서러운 기억은 새벽마다 쥐가 나는 내 다리를 주물러서 깨워주던 다정한 엄마와 늘상 부딫혀서 날 혼란스럽게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엄마는 왜 그렇게 아픈데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아빠는 왜 그렇게 앓아누운 엄마에게 남보다 못한 태도를 보였을까? 그런 일이 있고나서 왜 엄마는 아빠에게 화를 내지 않았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만약, 아빠가 아픈 엄마를 위해 달려왔다면, 엄마를 간호하고 위로하고 구급차를 불러줬다면 과연 어린 나는 아빠를 보며 안도하며 울며 안길 수 있었을까? 아니면 엄마가 나중에라도 아빠에게  정당하게 분노하고 요구했다면 나와 아빠와 엄마는 많이 달라졌을까? 


그래서 나도 지금보다는 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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