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쓰다 | 10 ARTICLE FOUND

  1. 2014.08.31 어설픈 위로는 집어치워라 머저리들아.
  2. 2014.06.14 나의 뮤지컬 수업
  3. 2014.06.13 # 아빠와 나와 이선희
  4. 2013.11.21 #꿈 - 뉴질랜드에 가다
  5. 2012.08.01 # 아빠와 나
  6. 2012.06.13 # 불안
  7. 2012.06.13 출사표
  8. 2011.11.20 [단편] strawberry fields forever (1)
  9. 2011.11.20 엄마가 사라진다면 (1)
  10. 2011.11.20 사춘기는 끝났다

 

오늘 아침, 엄마는 자고 있는 내 방문을 열고 단호박 찐 것과 삶은 달걀을 사식처럼 넣고 집을 나섰고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안돼 아빠가 벌컥 내 방문을 열었다가 날 발견하고 놀라 문을 닫았다. 특별할 것 없는 주말의 일상일 수도 있겠지만 행간을 읽는다면 다른 이야기다.

 

첫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냉장고가 멈춰버린 집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없고, 며칠째 나와 신나게 싸우고 있는 엄마는 어젯밤일이 미안해서 내게 먹을 것을 좀 주어야겠는데 거실에 두었다가는 아빠가 다 먹어치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꼭 이럴 때만 나오는 다정하고 미안한 얼굴로 남몰래 사식을 넣듯 내 방에 구호물품을 넣어줬다. 둘째, 내가 잦은 성희롱과 말바꿈 등에 지쳐 퇴사하며 받아온 견과 60봉 셋트를 온 가족이 드나들며 집어먹으라고 거실에 뒀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남들 손대기도 전에 아빠가 홀랑 절반 이상을 먹어치웠다. 나는 그저 어이가 없었고 엄마는 거실에 둔 내 잘못이라며 내 방에 견과를 치워놨는데, 아빠는 방이 빈 줄 알고 이걸 가지러 살금살금 왔다가 내가 아직 방에 있는 걸 보고 놀라서 돌아나갔다.

 

참 별것 아닌 일이 참 복잡하다. 가정불화나 가난에 같은 일은 늘 이런 식으로 아주 일상적인 일들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쓸데없는 함의가 많아 소모적이다. 이런 건 유사한 경험하지 못한 이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종종 마주하는 것만으로 지치고 피곤한 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해명하거나 설명해야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나를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이게 무엇인지 경험적으로 알면서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대응 하거나 어설프게 위로하며 내 입을 막는 이들이다.

 

그래, 아빠가 나를 걱정하거나 깨우려고 내 방에 왔을 수도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나는 왜 도대체 몇 해만에 아빠가 나를 걱정하고 동시에 돌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심지어 그 의지를 실행하려 했는지, 도대체 무슨 깨달음이 그를 적어도 반년이상 출입하지 않던 이층으로 발걸음 하게 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21세기 서울을 배경으로 전기 없이 살게 된 일련의 사태가 무책임한 그의 행동이 피운 절정 부분이고, 그 후에도 방에서 혼자 노트북을 하며 즐기기 위해 전등 3개정도 켤 최소전력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가 했던 노력, 내가 온수를 틀었을 때 그 노트북이 꺼질까봐 내가 냈던 짜증 등의 모든 행동을 합리화해야 한다. 나는 우선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그럴 의지가 없다. 아무리 가혹하고 잔인해서 내 속을 뒤집어놓은 현실이라도 나는 직시해야하고 그래야 이 진흙탕 속에서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그래도 아버지가 정정하게 살아계심에 감사하라는 당신에게 해 줄 말은 하나다. 좋은 가부장은 죽은 가부장뿐이다. 내 측근은 가끔 나에게 굉장히 가부장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아련하게 추억한다. 매일매일 아버지가 주는 괴로움에 시달리는 내가 그를 괴로워하지도 무례하게 느끼지도 않는 것은 그가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셨다면 나는 아직도 싸웠을 거야”하고 말하기 때문이고 내게 ‘너도 살아계실 때 잘해두라’ 따위의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아련함이 미화된 기억이든 애증의 산물이든 나는 그것에 대해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내게 당신의 결핍과 소망을 강요하지 마라. 당신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고 당신은 내가 아니다. 내 아버지가 죽고 나면 그때 내가 그리워하고 애도하고 추억할 것이다.

 

내 괴롬과 슬픔이 대단히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아니고 내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유사한 경험을 했다고 해도 우리의 아픔은 크게 다르다. 그러니 아픔의 농도와 강도, 길이 기타 등등의 모든 비교는 무의미하다. 나는 내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 이유로 그의 모든 행동이 날 괴롭게 하고 나는 뿌리 채 흔들린다. 그렇지만 나는 내 사랑을 인질삼아 그를 포용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아닌 당신이 그 어떤 이유로든 내게 어떤 선택이나 감정, 혹은 사고를 강요할 수 없다. 당신은 내가 아니고,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위로를 바라고 글을 쓴 적이 없다. 그냥 숨을 쉬고 싶고 내 슬픔에 바닥까지 내려가고 나면 내 안에 부유하는 것들이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쓴다. 당신이 내 이야기에 공명한다면 기쁘게 생각하지만 그뿐이다. 나는 내 이야기와 감정을 계속해서 할 것이고 당신은 불편하다면 얼마든지 나를 외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제발 아는 척하면 건내는 그 어설픈 위로를 집어치워라 이 머저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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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위로는 집어치워라 머저리들아.  (0) 201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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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흔한 취업준비생이고 별 볼일 없는 백수인데, 딱히 그럴싸한 이유나 대단한 뜻을 가졌기 때문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고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기관의 해외인턴도 다녀왔는데 그 뒤로 어쩐지 일이 풀리지 않아 무한 대기 상태에 돌입한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취준생. 절망하고 자괴하는 일도 익숙해져 그저 상황을 납득한 채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취직에 힘쓰는 중인데, 이렇게 평범하고 별 볼일 없는 내 생활 중 눈 여겨볼 만한 행보가 하나 있다면 그건 매주 토요일 뮤지컬 수업에 가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날 '생각하는 시민'으로 키우고 싶으셨다는데, 이게 깨어있는 시민을 주창하는 김어준씨가 나오기 20년쯤 전 목표라는 걸 생각하면 꽤 고무적이다. 시민이라면 응당 악기하나 쯤은 다루고 예술을 음미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는지 나는 없는 살림에도 피아노를 체르니 30번까지 배웠고, 생일 선물로 예술의 전당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 1년 정기권 티켓을 선물 받는 어린시절를 보냈다.

 

엄마가 이런 노력을 하면서 간과한 것은 내가 폭발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린 나는 폭발적인 감수성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는데 나의 애청곡은 '엄마 나 살고 싶어요'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노래를 였고, 만화 플란더스의 개의 결말 때문에 대성통곡을 하다 유치원을 결석했고, 좀 더 자라 사춘기가 되서는 두시간짜리 뮤지컬을 보는 내내 우는 통에 직원이 따로 쫓아와 안부를 묻는일도 있었가. 이런 내 감수성은 엄마의 예술 교육과 만나 전혀 엉뚱한 결과를 도출해냈는데, 나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다.

 

철썩같이 그 꿈을 믿고, 삶의 모든 이유를 거기 두며 노력한 시간이 있었다. 예고에 가고 싶었지만 시험도 보지 못했고 연기학원 대문 도 구경한 적이 없었지만 단 한번도 안될 거라 생각하지 않다. 그러다가 결국 연극영화과 입시도 치뤄보지 못하고 대학생이 됐을때, 나는 그제서야 집에 있는 모든 자료를 버리고, 공연장에 발길을 끊고, 내가 정한 다른 방향만을 보고 걸어갔다. 이제까지 눈을 돌리면 꿈이 꺽이고 흔들릴까 두려워했던 것처럼, 이제는 다시 그 길에 눈을 돌렸다 꿈꾸게 될까 두려웠다.

 

가끔씩 티비에 노래나 춤, 그게 무엇이든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선택하고 노력는 또래가 나오면 무병을 앓듯이 몇일을 시달렸다. 그 반짝이는 꿈과 괴롬의 아름다운 감탄했다. 그러면서도 내것이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일이 내겐 너무 괴로웠고, 동시에 눈을 뗄 수 없이 매혹적이었다. 이뤄낸 것이 아니라 이뤄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부아가 났고 온몸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나는 취미로도 그일을 할 수 없었다. 진지하게 하지 않을거라면 하기 싫은 오만이 있었고, 가볍게 시작했다가 다시 온 인생을 걸고 싶어질까봐 겁이났다. 정말 하고 싶었던 옛 소망이 두려워져서 공연 하나 마음 놓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시작은 단순했다. 친한 친구의 뮤지컬 수업에 빈자리가 생겼고 삶이 너무 답답해서 뭐라도 하려던 내게 그 소식이 닿았다. 지르는 마음으로 결심을 한 뒤 입금을 했고 수업에 나갔다. 그동안의 모든 두려움이 허탈할만큼 내 삶은 무너지지 않았고 나는 괴롭지 않았으며 노래는 즐겁고 연기는 행복했다. 내 수준과 실력은 논외로 하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오직 나의 즐거움만을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노래하고 소리내고 움직이고 악보를 읽고 연기하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게다가 내 안에 내가 모르고 있던, 잃어버린 수많은 나 자신이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매일을 새롭게 했다. 

 

오늘 8주차 수업이 지났다. 나는 첫노래 인어공주를 끝내고 이선희의 새로운 노래를 부른다. 녹음을 들어보면 여전히 들어줄만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진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저 지난 주의 나보다 잘하겠다는 내 목표는 성취됐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정체되어 고여있는 나 자신이지만 나는 분명 노력하고 있고 또 성장하고 있다. 내가 가장 하고 싶던 그 분야에서.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던 일을 어떤 형태로나마 시작한 것, 이건 분명히 내 평생 가장 잘한 결심 중 하나가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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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이선희를 좋아한다고 했다. 아빠는 이선희의 노래도 좋아했지만 이선희도 좋아해서 엄마에게 그 같은 단발머리를 몇번이나 권했다고 했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몇번이나 했고, 언젠가는 아빠 앞에서 이 이야기를 하며 아빠를 흘겨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어렸음에도 좋아하는 여가수의 머리를 권하는 아빠의 행동이 퍽 우습다고 생각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흘기면서 이야기하는 엄마와 못들은 척 웃어 넘기는 아빠의 모습은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남았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 한쪽이 아련해졌고, 가끔 검은 단발머리를 볼때, 이선희를 닮은 고모 만났을 때, 이선희의 노래를 들을때마다 그랬다.

 

그래서 이선희의 신곡을 꼼꼼히 듣고 정말 좋다고 느꼈을 때, 아빠 생각이 났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안방에 있는 -보통의 스피커와는 다르게 음역대 별로 다른 소리를 낼 줄 안다는- 아빠가 애지중지하는 아주 오래되고 커다란 스피커로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소리를 아는 아빠와 함께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을 듣는다는 건 아주 좋은 생각이고, 적어도 내 인생에 썩 괜찮은 한장면을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내내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서도 함께 들을 음악 생각에 마음이 벅찼다.

 

아빠와 나와 음악사이에는 또 다른 추억도 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 처음 맞은 생일 나는 간절하게 핸드폰을 바라고 있었고 용기를 내어 그 사실을 이야기하자 한번도 그런적이 없는 아빠가 선물을 사러 나갔었다. 얼굴이 아플정도도 찬 바람이 부는 겨울 밤이었다. 밤 늦게 나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아빠가 걱정되기도 했고, 그 이유가 핸드폰에 개통에 걸리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내 기대를 키워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한참이지나 돌아온 아빠는 나에게 이소라 베스트 앨범을 건냈다. 이소라가 얼마나 대단한 가수인지 아빠가 이야기 하는 동안 나는 포장조차 되지 않은 씨디를 실망감을 감추는데 애를 썼다. 그때 나는 그때 핸드폰을 가지고 싶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소녀였고, 내가 이소라를 정말 알고 좋아하게 되는데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아빠가 그토록 찬사하는 이선희를 듣는 어른이 된 것이다. 그 사실이 날 기쁘게 했다. 아빠가 변하고 내가 변했지만 음악을 듣는 4분 정도는 친밀한 감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런게 음악이고 나는 이제 아빠와 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까.

 

오랫만에 방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었을 때, 아빠는 빨간 눈을 하고 나를 맞았다. 걱정이 됐지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술에 취한 아빠는 이선희를 좋아했었는데 뭐 그정도는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언제나 내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이선희에게도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스피커 이야기를 하시는 듯 하다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아빠가 얼마나 잘 나갔는지를 늘어놓았다. 당신이 고등학생이던 때는 지금 같은 엠프가 없어 음향효과 연출이 어려웠는데, 문학의 밤 행사에서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한 효과를 연출해낸 아빠와 그에 놀란 친구들 사이에서 화재가 되었던 이야기, 인쇄기는 커녕 단색 컬러로 작업하던 시절에 수동으로 풀 컬러 초대장을 만들어낸 이야기. 그건 모두 내가 외울만큼 들어온, 끝없이 이어지는, 모두를 놀라게 할만큼 대단한 아빠와 그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는 과거의 이야기였다.

 

아빠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노래를 들으면서 아빠가 음악에 대한 조예와 음향에 대한 지식을 무작정 늘어놓더도 그 4분간 나는 행복하게 대답할 것이고, 또 그럴 수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 결심이 얼마나 하찮았는지 깨달았다.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이런 상황에 크게 마음 아프지 않았다. 

 

나는 적당한 시점에서 끝이나지 않을 아빠 이야기를 끊고, 아빠가 하던 이야기의 이어질 다음 내용을 대신 말했다. 수십번쯤 들은 매번 다른 그 이야기를 내 입으로 정리하고 그 자리에서 돌아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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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적으로 꾸는 꿈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뉴질랜드에 가는 꿈이다. 약간씩 각색되긴하지만 꿈에서 나는 내가 살던 동네에 간다. 마을에서 가장 번화한 골목을 바로 앞 바다, 해변을 따라서 기차가 다니는 그림 같은 풍경. 바다를 등지고 언덕을 오르면 카페와 가게를 지나 사람 사는 동네가 나온다. 


 꿈에서 나는 언제나 배를 타고 그곳에 간다. 내리자마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서 언덕 꼭대기에 있는 허름한 성당으로 향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가 다시 출발하기 전 그 촉박한 시간동안 성당에 꼭 들어가고 싶어한는데 숨차게 달려는 게 급해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토록 그리워하는 이들의 차가운 시선이 두려워 피하는 지도 모른다. 마음 졸이며 달려가다가 배 시간 때문에 돌아오며 원통해하거나 머리 뒤로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데 시계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게 전부로 성당에 도착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달리면서 마음을 졸이고 사람들의 비난에 의연한 척하느라 끊임없이 마음이 에일 뿐이다.
 
 딱 한번 성당에 도착한 적이 있다. 머리서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모습은 사라지고 켜켜이 먼지를 뒤집어써 무슨 색인지 알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소리도 없이 무너질 것 같은 폐허였다. 도착하기만 하면 나를 기다리는 가장 그리운 누구날도 있을 줄 았았는데, 간절하고 애틋하게 성당에 당도하고 싶어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애가 탔다. 커다란 자물쇠는 몇번 만지작거리니 의외로 쉽게 풀렸고 들어갔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 애인이 그 꿈에 나온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그랑자드 섬의 일요일 오후를 누리는 아가씨처럼 드레스를 입고 망사 장갑과 양산까지 받쳐 들고는 애인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도착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도착해야 할 시간을 알게 됐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우아하고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부두 주변을 거닐면서 동네를 소개하고, 가보고 싶었던 성당의 이야기를 했다. 손톱 만하게 보이는 검은 건물을 올려다보면서. 

  
 그리고 어제 그 꿈을 꾸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그 성당에 가고 싶지 않았다.  혼자 도착한 두부에서 숨이차게 달리는 대신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나는 처음으로 잊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 손을 붙잡고 인사를 했고 그들은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느라 내게 인사할 시간도 없었다. 여전히 나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의연했고 사실 그건 당연히 그런 일이었다. 그리고 깨고 나서 아마 다시는 적어도 한동안은 그 꿈을 꾸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그토록 애달프게 그리워하는 그 곳은 없었다. 그리고 나를 애달프게 한 이도 이젠 없다. 꿈처럼 아름다운 마을에는 해변이 있고 기차가 있고 언덕이 있지만, 가끔 고기 배가 들어와 생선을 쏟아 놓을 뿐 여객선이 드나들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안달하던 성당이 있는 자리엔 내가 다녔던 작은 교회가 있다. 내가 무엇을 그토록 되찾고 싶어서 안달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서서히 놓아가는지 꿈을 통해서 짐작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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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기억하면 집안 공기가 떠오른다. 계절은 늦 여름이나 가을 즈음 같았고 저녁 시간에 불을 켜지 않은 집안은 어둑어둑 해졌다컴컴하면서도 붉은 기운이 맴돌던 좁은 부엌에서 밖으로 나있는 창을 내다보았다면 타는 듯이 지는 노을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기억 속의 나는 창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나는 노을을 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형광등을 켤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아.


나는 아직 학교에 들어 가지 전이었고, 내 동생은 나보다 어렸다.


엄마가 왜 아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갑자기 쓰러져서는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방에서 앓고 있는 엄마 곁에도 가지 못하고 방문 밖, 부엌에서 겁에 질린 동생과 앉아 있었다. 집이 좁았다. 엄마의 신음 소리만 들리는 어두워진 거실에서 겁도 먹지 못하고 꼼짝 없이 앉아 있으려니 다른 세계라도 온 기분이었다.


옆에 오지 못하게 하던 엄마가 나를 불렀다. 몸이 굳어가다 못해 손가락이 안으로 곱아 갔다. 엄마에 지시에 따라서 주변의 수건과 동생의 천 기저귀를 말아, 엄마에 손에 억지로 쥐였다. 양손으로 간신히 엄마의 곱은 손을 펼치는 게 쉽지 않았다. 침착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울었거나 겁먹었던 기억은 없다. 그냥 엄마의 곱은 손을 펼치는 게 너무 힘에 부쳤다. 다시 한번 숨을 들이키고 침착해지려고 애를 썼다

 

엄마는 구급차를 부를지언정 아빠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명확하지 않은 기억에 고비를 넘기고서야 아빠가 들어왔다. 이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아빠를 보고 안도하지 않았던 것을 확실하다. 아빠는 작은 부엌 창 옆에 있던 현관문으로 들어와서는 평소처럼 행동했다. 구두를 벗고 집으로 들어와서 천천히 넥타이를 끌렀다. 옷을 갈아입는 내내 엄마가 앓는 소리를 하자, 무심하게 "아픈 티 내지 말라."고 말했고, 엄마는 대답도 없이 앓았다.

 

아빠는 앓아 누운 엄마가 보기 싫었는지 저녁도 먹지 않고 나갔다. 아빠가 다녀간 집에는 형광등이 켜져 있었을 뿐 달라진 게 없었다


그냥, 혼자서 열이 심해서 잠이 들도 또 잠이 들다가, 문득 그 때 생각이 났다. 


어쩌면 내가 자주 그리고 또 많이 아플 때 엄마가 내게 보인 행동들은 저 모든 일이 마음에 남아서 생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한 집에 살 때,  아픈 내게 짜증과 화를 냈던 엄마와  결국은 엄마가 있는 집에 친구가 와서 죽을 끓여줬던 기묘한 일을 나는 기억한다. 이 서러운 기억은 새벽마다 쥐가 나는 내 다리를 주물러서 깨워주던 다정한 엄마와 늘상 부딫혀서 날 혼란스럽게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엄마는 왜 그렇게 아픈데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아빠는 왜 그렇게 앓아누운 엄마에게 남보다 못한 태도를 보였을까? 그런 일이 있고나서 왜 엄마는 아빠에게 화를 내지 않았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만약, 아빠가 아픈 엄마를 위해 달려왔다면, 엄마를 간호하고 위로하고 구급차를 불러줬다면 과연 어린 나는 아빠를 보며 안도하며 울며 안길 수 있었을까? 아니면 엄마가 나중에라도 아빠에게  정당하게 분노하고 요구했다면 나와 아빠와 엄마는 많이 달라졌을까? 


그래서 나도 지금보다는 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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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애인은 내게 참 잘해준다. 이젠 애인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린 잘 어울리니까!'라는 말이 내 입에서 장난처럼 나오는데,  순간들을 보면 참 신기하고, 그 신기함이 더 없이 즐겁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그 사실을 편안하게 시인할 정도로 안정감을 느끼고 있구나.'를 단번에 느끼게 해주는 그 장난은 언제나 즐거워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처럼 꺄르르 웃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리고 내 불안은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첫사랑을 앓았다. 처음으로 내 세상이 타인으로 인해서 재구성 되어서 온전히 다른 세상에 살아보았고 그 세상이 산산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붕괴는 상대 쪽에서부터 일어났는데 감정이 없는 지겨워하는 눈빛 앞에서 나는 쩔쩔매며 울기만 했다. 그 기간이 너무 길어서 만신창이가 됐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는 ''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라 그저 추측했다. 아마 내가 상대를 너무 좋아한 탓에 이 모든 문제가 생겼을 거라고. 내가 너무 좋아한 탓에 나는 나를 잃고 당신은 나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거라고.

 

 한번, 다시는 한국에 다시는 오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기적 같은 일이었다그런데 어느 날 나를 보며 미래를 이야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낯빛을 바꿨다. 나에게 어떤 해명도 해주지 않았다나와 당신의 공간이 갑자기 타인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당신을 잃은 나는 모두에게 공공연히 매장 당했다. 그리고 끝까지 나는 어떤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당신은 나를 탓했다. "너에게 실망했다." 그 한마디만 내게 남았다나는 빈손으로 그곳을 떠났다. 나를 지키려면 그래야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당신도 그렇게 나를 버릴까 두렵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내 등뒤에서 불행이 습격할 것만 같아서 두렵다. 사랑이 내 애정과 노력에 항상 부응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배운 나는 늘 노력하면서도 무력하다, 그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나라는 것, 원흉인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또 아무도 남지 않으리라는 것이 두렵다.

 

 

게다가 내 예민함과 극단이 날 불편하게 한다.

예민하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과는 다른 반응을 의미하는 것 같다. 다른 것에 매력을 느끼고 같은 것에 반응하지 않는 것. 내 취향도, 내 망상도, 내 연애도. 순간순간 생각한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폭발적인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말한다면 기겁해서 달아나지 않을까? 달아내지 않더라도 지금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예쁘고 사랑스런 눈으로 보아줄까? 어쩌면 나는 내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이'라는 자신이 없나 보다. 

 

불안이 돋으면 나는 예민해진다. 당신을 만나자마자 표정을 살핀다. 여전히 당신의 눈빛이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지, 오늘도 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말하며 입맞춰줄 건지, 그걸 살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감각을 세운다. 조금이라도 다른 당신이 감지되면 그 원인이 피로인지 업무인지 알기 전까지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또 나쁜 버릇이 돌아오려고 한다. 아직 내 몸을 원하면 나를 원하는 게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다다르면 그런 내 자신 너무 불쾌해서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불안을 당신에게 말할 수 없으니 티 내지 않는다.

 

당신이 더 이상 나를 사랑스럽게 봐주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말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차근차근 내 마음을 회수해야 한다. 아프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어쩌면 변한 당신이라도 가지고 싶게 될지 모른다. 그게 두려우니까. 먼저 알아채고 자리를 피해야 한다.

 

나는 매번, 그리고 매일 여전히 당신의 얼굴을, 목소리를 살핀다무엇이 가장 불안하느냐면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내가 너무 불안하다. 이 모든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면서 당신 앞에서 웃고 있는 내가 너무 불안하다. 내가 생각하는 내 불안은 이런 것들.

 

 

 

 

믿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말했듯 지금까지 보여준 당신은 갑자기 변할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일지라도 사랑해주겠다는 그 말들. 불안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팔을 길게 뻗어서 저만큼 밀어낼만큼의 힘을 준다. 그렇게 조금씩 불안을 밀어내면서 시간이 흐르기를 지금은 그것만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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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기적이라서

결국 내가 가장 관심이 있고 잘 아는 건 내 자신이니까, 하고 싶은 말이 가장 많은 건 내 자신에 대해서니까, 내 이야기를 실컷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내와 닮은 타인을 나에게 비추어 볼 수 있다면 타인이 또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 누가 관심을 가져야만 떠들 수 있나?

어제 본 영화의 주인공 말처럼 "나는 계속 이야기 할 거다."

누군가가 듣던지 말던지 궁금해하던지 말던지, 나는 여기에 있으니까 이야기 하겠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자기소개서를, 회고록을, 자기개발서를, 사용설명서를 나는 여기에 쓰겠다.

 

검고 싶은 내 심연의 바닥까지, 성찰하며 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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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너는 여자를 너무 좋아해.”


그는 말했다.


“나는 사람이 좋아, 혼자 있는 게 싫어, 그러니까 나는 사실 외로움을 못 견디는 거야.”


그녀는 동의했다, 그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 있지 못한다는 것을. 고향 땅을 떠난 타지에서, 모두들 비슷비슷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그의 집에서는 매일 같이, 아니 하루걸러 하루씩 파티가 벌어지곤 했다. 누군가의 환영 파티, 또 다른 누군가의 송별 파티, 가끔은 생일 파티, 그리고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하고 작은 이유의 파티들로 그의 집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들끓었다.


그리고 파티가 없는 그 하루걸러 하루조차, 그는 혼자이고 싶지 않아했다. 그의 집 근처에 사는 세 사람의, 굳이 파티라고 부르려면 부를 수 있는 작은 모임. 때로는 운동을 하고, 때로는 드라이브를 했지만, 대체로 와인을 마셨다. 달달하고 가격이 좀 있는 화이트 와인부터, 세일 목록에 올라온 레드와인, 그리고 조리용으로 나온 박스 와인까지, 어느 날은 그녀가 이제는 와인이 입에 물린다며 투정을 할 정도로 거의 매일 밤을 와인을 마셨다.


세 사람이 서로를 나이에 관계없이, 성별에 관계없이 동네 친구1, 동네 친구2,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을 때 즈음, 동네친구2가 자리를 비울 때면 그녀와 그는 가끔씩 단둘이 와인을 마셨다. 영화를 빌렸다. 주로 연식이 있는 로맨틱 영화로. 영화를 보기 시작할 때면 그녀는 소파에 그는 그의 침대에서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했지만 영화가 끝날 때는 침대 이 끝과 저 끝에 누워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실, 그와 단둘이 와인을 마시던 첫날을 기억한다. 그의 여자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간 날, 그녀는 그와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창문을 열고 빨래를 널고 있는 길을 그녀가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날이 그의 여자 친구가 떠난 날인지를 기억하고 있진 않았다. 그냥 인사치례 삼아, “와인 마실까?”하고 물었는데, 영화를 빌려 두었던 그가 “영화 보면서?”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와인을 따르는 동안, 그는 영화를 보면서 울어버릴 심산으로 로맨틱한 영화를 잔뜩 빌려 두었다고 말했다. 그날만큼은 그녀도 동네친구1에게 살짝 조심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친한 남자의 여자 친구가 떠난 날, 그와 단둘이 와인을 마시면서 로맨틱한 영화를, 한국도 아닌 타지에서 마신다는 것은 그녀에게 역시 위험하게 들렸다. 그도 역시 고마워하면서도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이만큼씩 떨어져서 와인을 마셨으니까.



작다면 작은 유학생 사회, 아니 이민 사회에서 그와 그의 여자 친구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의 여자 친구가 이곳에 도착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시작한 관계, 그리고 비교적 오래 머물러야 할 그와 한 달 뒤에 떠날 그의 여자 친구를 두고 곱지 않은 시선들이 오갔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그는 "whatever."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보란 듯이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다.


그도 그의 여자 친구도, 그녀에게 흔치 않은 동갑내기 친구였지만, 그의 여자 친구와는 그다지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그녀는 그의 여자 친구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타입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일까, 사실 그들의 관계에 대해 그다지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언젠가 친한 언니와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그녀에게 진지해보였다. 제대하자마자 바로 떨어진 타지에서, 관심이 있는 듯 시작한 여자 친구의 농담에 언제부터인지 그는 진지해보였고, 그녀는 그 이유가 그가 언제나 사람에 굶주린, 외로움을 달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여자 친구가 그만큼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멀리 여행처럼 온 한 달 반 동안 보살펴주는 누군가가 있고 이곳저곳 발이 되어줄 그와 그의 차가 그녀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오직 그만 분명히 보지 못하는 이유도, 역시 외로움 때문이라고 그녀는 늘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여자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데이트 코스, 괜찮은 식당, 괜찮은 이벤트 등을 종종 그녀에게 물어왔다. 그리고는 마음을 다 열지 않는 여자 친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그때 마다 그녀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들을 꾸역꾸역 넘겨버리고는 무난한 답변들을 해주었다, 파티에 초대 받은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가끔은 생각했다, 그도 아마 그 이유들을 알고 있을 거라고. 또 가끔은 생각했다, 그녀가 솔직한 생각을 말하면 혹시나 오해를 받을 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사심 없는 담백한 관계에 영향을 줄 거라고. 그녀는 연애가 끼이지 않은 그들의 관계에 만족하고 있었고, 그들의 관계가 로맨틱해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와인 두병을 사들고 영화를 6편이나 빌려들고 그의 집으로 갈 때도 그녀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모처럼 짧은 치마를 입고 있다는 사실도 비가 내려서 추적추적 젖은 날씨에 흰 옷이 좀 젖었다는 것도, 그저 친한 동네 친구1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날은 그녀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유학지에서 만난 그 누군가를 그녀는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었고, 그날은 그런 그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을 확신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여자 친구가 떠나간 그날 그녀가 그에게 해준 것처럼, 사심 없는 이성 친구에게서 위로 받고 싶었다. 와인을 마시고 비디오를 보면서 아주 조금은 멜랑콜리한 기분에 잠기기도 하고, 그녀가 그에게 해줬던 가벼운 포옹을 돌려받고 싶었다.


그의 여자 친구가 떠난 날, 차마 공항에 나가지도 못하고 돌아온 그와 와인을 마시다가, 그녀는 그가 문득 안쓰러워졌다. 끝까지 여자 친구를 그리워하는 그가 여전히 답답하기도 했고, 그 혼자만 진실을 보지 못할 만큼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더 안쓰러웠다. 언제나 연애를 하지만 그 마음이 허전해서 언제나 외로움에 허덕이는, 그래서 그 연애조차 행복하지 못한, 한국에 두고 온 친구도 생각이 났다. 술김에 그랬는지 혹은 원래 엉뚱하게 대담한 성격 탓인지, 엄마처럼 손등을 토닥여주다가 그곳의 사람들이 인사로 하는 그것처럼 그를 살짝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뒤로 둘 사이에는 모종의 의리 같은 것이 생겼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 해준 내가 ‘아끼는’ 친구.



“영화는 못 볼 거 같은데, 어떻게 하지?”


그가 결국 세달 동안의 계약 기간을 끝내고 이사한 곳은 여행자 숙소였다. 그토록 이사를 나오고 싶어 했으면서도 막상 기간을 다 채우자 갈 곳이 없었다. 그녀도 지난 6개월 동안 벌써 3번의 이사에 지친 터라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임시로 들어간 곳이라지만 익숙한 그의 물건에 일일이 적힌 그의 이름을 보면서 조금 우습기도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냥 그건 집에 가져가서 볼게.”


그녀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고, 그 또한 이사를 간 뒤로는 처음가보는 그의 새 집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뜸했던 그의 파티를 이해 할 수 있었다. 그의 새집인 숙소는 안전을 위해서 외부인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방문만 열고 나가면 바로 눈앞에 있는 테이블과 플레이어를 두고 그와 그녀는 그의 방에 숨어서 와인을 마셨다. 좁은 공간에 낮은 베드 테이블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곳이 편했다. 이사한지 얼마 안 되는 새 집의 참견 많은 집주인에게 한밤중에 술과 남자를 데려 온 이유를 영어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그리고 오늘만은 그녀도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너무나 허전하고 공허한 기분이었다.



원래는 두 사람을 위한 방을 아직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가 혼자 쓰고 있었다. 방이라고 불리는 공간이지만, 푹 꺼진 침대 두 개와 그 사이에 베드 테이블 그리고 침대 발치에 있는 벽장 하나가 전부였다. 침대 하나씩을 의자 삼아 앉고 베드 테이블을 테이블 삼아, 머그잔에 스파클링 와인을 담아 두니 왠지 서글퍼졌다. 지난 세달 동안 너무 많은 파티를 벌였다고 생각했던, 속아서 계약한 그의 다소 호화로운 집이 문득 아쉬워졌다.


달달한 와인에 신세한탄을 안주삼아서 머그로 한잔 두잔 비우다보니, 병이 바닥을 보이는 건 금방이었다. 그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는 왜 마음이 아픈지에 대해서는 아직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영화를 보고 싶었던 마음이, 영화는커녕 음악도 없이 그와 단둘이 그리고 와인과 함께 있다 보니 어색한 마음에 그들은 끝임 없이 이야기 거리를 찾아 겉돌았다.



“이제 왜 그렇게 우울하신 지 말해 보실까요?”


결국 그가 뜬금없이 요점을 물었을 때, 그녀는 마음에 있는 말을 전부 하지 못하고 그저 주섬주섬 주어 섬기기만 할 뿐이었다. 아주 오래된 드라마를 보았는데, 헤어지고도 사랑하는 그들이 밉고도 부러웠다고, 함께 할 때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그녀와 그녀의 그 누군가가 너무나 아쉽고 마음이 아파서 보내지 못하겠다고, 떨쳐내지 못하겠다고. 하지만 두서없이 쏟아 내는 통에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도 알아듣지 못했고, 이미 그때 즈음에는 취해 있던 그는 언제나처럼 별것 아니라는 투로, 네가 잘못된 드라마를 보았다고, 이제는 끝났으니 다 잊어버리라는 그 뻔한 말을 반복했다.


보고 싶던 영화는 옆에 쌓아 둔 채로, 취하고 싶던 와인은 달달하기만 하고, 위로를 바랬던 친구는 마음을 몰라준 채로 무심하기만 하니 그녀는 더더욱 외로워져 이제 그만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이 잔뜩 상해있는 그녀에게 일어난 다음 상황은 그녀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했다.


그녀는 그와 키스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친구라고 믿어왔던 그가 하는 행동에 실망스러웠다. 위로를 바랬던 친구가 남자로 변하자 당혹스러웠다. 아주 잠깐 혼란스러웠지만, 그녀는 곧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정 내렸다. 지금 그는 남자고, 술을 마셨고, 눈앞에 여자가 있고, 그저 언제나 외로웠다. 그리고 그가 다시 한번 키스를 시도했을 때, 그녀는 그와 키스했다. 하지만 그가 그녀위로 올라와 그녀의 치마를 걷어 올렸을 때, 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방밖으로 나왔다.


눈을 감고 생각하려고 애써보았다. 그녀는 그냥 여자고, 술을 마셨고, 눈앞에 키스하려는 남자가 있고, 지금 그녀는 너무나 외롭다고. 하지만 그녀는 여자였다. 친구와의 키스는 뒤끝이 씁쓸했다. 잊지 못한 누군가 때문에 마음이 공허한 채로 그저 친구인 남자에게 안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와의 마지막 키스를 잃은 것 같은 기분에 괜시리 더 서글퍼졌다. 다시는 단둘이 와인을 마시지 않았다.



그가 동네친구2의 집으로 이사를 들어간 날, 집들이 삼아 만난 그들은 오랜만에 동네친구1과 동네친구2가 되어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몰아치듯이 내리는 비와 저녁이 돼서 어두컴컴한 거리, 간헐적으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과 자동차의 서치라이트, 그리고 서치라이트 불빛 밑으로 보이는 강한 빗줄기는 흡사 한국의 장마와도 같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친한 사람들의 대화로 차안의 분위기만은 흥겨웠다. 장대 같은 빗소리도 음악소리와 어우러져 오히려 적당한 소음이 되니 편안하지만 설레는, 기분 좋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빤 술을 너무 좋아해 솔직히.”


“나 정말 담배도 끊을 수 있고, 여자 없는 것도 참을 수 있는 데, 술은 진짜 못 끊겠어.”


“그거 그 정도면 중독이야 오빠, 큰일이다 진짜.”


“진짜 형님은 술을 정말 사랑하지는 거 같아요.”


“맞아, 근데 솔직히 너는 여자 밝히잖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을 동네친구의 말이 그녀로 문득 그날의 일들을 기억나게 했다. 기분이 묘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중에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몰래하는 연애마냥 마음을 설레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도 지금 그 때의 일을 떠올리는 걸까하는 생각이 드는 반면, 그가 만약 지금의 대화 정도로 그 때의 일을 떠올리고 그녀처럼 묘한 마음을 느낄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런 실수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그는 결국 그냥 남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동네친구2도 이미 그 사건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왠지 억울한 기분에 그에게 조금 자극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너는 여자를 너무 좋아해.”


그는 말했다.


“나는 사람이 좋아, 혼자 있는 게 싫어, 그러니까 나는 사실 외로움을 못 견디는 거야.”


그렇게 내뱉은 말이 마지막 대화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조금 비뚤어진 마음에 내뱉은 말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녀에게 있어서는 난생처음 겪는 자동차 사고였다. 특별할 건 없었다. 차가 뒤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서 범퍼차를 탄 것처럼 쿵하고 부딪히는 느낌과 함께 얼굴에 갑자기 쥐가 올랐다. 무슨 일인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드라마에서나 본 것처럼 커다란 불빛과 함께 기억을 잃었다.



비 내리는 겨울 밤, 반대편 차선으로 달리는 일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그는 속력을 냈다. 가로등도 없는 모터 웨이에는 그의 자동차의 서치라이트만이 빛났고, 겨울비 소리와 멋들어지게 어울렸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차량이 없어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특히 후진이 미숙하던 그가 급격하게 후진을 했다. 그리고 그 속도 그대로 불을 켜지 않은 채 뒤 따라 오던 차를 들이 받았다.


한국에서조차 운전대를 잡아 본 적이 없는 그녀는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곳에 가로등은 있었는지, 뒤에 따라오던 차가 있었는지, 그들의 차는 서치라이트를 키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따라서 세 사람 중 홀로 회복 되어가는 그녀가 받은 많은 질문에 그녀는 어떤 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때의 기억라고는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가끔 보이는 경찰들의 대화에서, 그것도 간신히 알아듣는 외국어를 통해 병실에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다만 그녀의 얼굴에 경련이 일던 순간, 그에게 뱉은 못된 말을 조금은 미안해했던 것도 같다. 그는 그녀가 내뱉은 말을 들었을까? 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그의 마음에 남았을까? 혹시나 그의 이유 없는 후진의 원인이 그녀가 했던 말 한마디는 아니었을까.....?



죄책감을 가지기에는 너무 사소하고 모르는 척하기에는 너무 찝찝한 일이었다. 그보다는 그를 잃었다는 일이 실감나지 않았다. 관자놀이를 눌러오는 통증에 고통스럽게 눈을 뜰 때 마다 보이는 하얀색 병원 천장과 그 기억의 사이사이로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허전하기는 했다. 그 허전함은 마치 그가 그녀에게 키스하던 날과 같아서 그가 죽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날의 친구를 잃었다는 슬픔은, 정확히 한 달 후 함께했던 그 드라이브로서 회복 되었듯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면 그가 돌아올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또 다시 그때처럼 궁금했다.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때의 키스가 그녀에게 충격이었던 것처럼 그녀의 말 또한 그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그리고 그녀가 그 키스에 대해 그에게 물을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 역시 그에게 물을 수 없었다. 최소한 그가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의식 없는 동네 친구1에게 물어보고도 싶었다. 친구의 의식이 돌아온다고 해도 그녀는 친구에게 말 할 수 없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그날의 키스와 같다고, 또 그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미묘한 슬픔과 죄책감은 떨칠 길이 없었다.


너무 많은 생각에 머리가 울렁거려 고통이 밀려왔다. 하얀 천장이 흐릿해지면서 눈이 감겨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잃은 친구를 다시 잃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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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cGom 2014.12.27 12: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이 느껴지는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친구들과 함께 천진하게 웃게 되는 때에도, 일 없이 찾아간 조교실에서 첫눈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겨울에도, 나는 내가 그 순간을 그리워할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는 슬픔이 천연하게 맺힌다. 순수히 슬픔에 잠기는 그 순간에도 그 기억이 행복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엄마와 함께하는 순간에서 그런 행복이 점점 찾아온다. 늦잠을 자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응석을 부리고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상을 받으면서 농담을 주고받을 때, 저녁을 먹고 함께 아이돌을 보면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수다를 떨 때, 자기 전에 누워서 가만가만 사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순간이 마치 내가 본 영화처럼 기억되어 나는 슬프다.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나는 영원히 그 순간을 그리고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잠을 잤던 엄마를 그리워 할 것이다.


다른 기억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행복한 종류의 것이라면, 나에게 엄마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두렵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내가 그 일상적인 순간들을 엄마라는 아무렇지 않던 존재를 이렇게 매 순간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이 또한 두렵다. 나는 어쩌면, 비로소, 벌써부터, 엄마가 나를 떠나가리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순간이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진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내 답답함을 호소한다. 머리가 굵어진 딸은 엄마의 잘잘못을 따지려들지만 게으른 몸을 움직여 엄마를 돕는데는 더디다. 한편으로는 마음에 걸린다. 이러다가 후회하겠지라고. 그렇게 한순간 생각하다가도 그렇지만 아직은 엄마가 내 곁에 있으므로 -문득 바라본 얼굴이 예전과는 다르더라도, 그래서 가끔은 괜히 서글프더라도- 나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 세상을 변하지 않는다. 상상하기 싫은 어느 날이 오면 내 세상은 와르르 무너지고 나는 세상의 모든 딸들처럼 후회할 거다. 혹은 다시 한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살아지거나.



2011년 1월 말레이시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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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미소 2012.06.15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울과 고통에 민감하다는 사실이 어떤 건지 잘 아는지라 많이 공감하구요, 크래님 블로그 오픈 축하드려요!!!!!!



1) 사춘기는 끝났다.

사춘기는 끝났다. 그것은 내가 더 이상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원망하며 증오하지 않는 다는 이야기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어른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던 내 생각이 꼭 내가 바라던 방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는 용서할 수 없어 눈물을 뚝뚝 흘리고 내가 저 자리에 서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리라, 힘없는 자신을 미워하며 입술만 물고 서 있던 일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끔은 이해 할 수 없던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의 몇 번 그들의 입장에 서기도 했으니 가끔은 그 때의 내가 귀엽기도 우습기도 했다.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이상 예민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처럼 매순간, 모든 감정에 충만한 채로 사물에 반응하지 못한다. 또한 언제나 긴장으로 온몸이 털끝까지 바짝 서서 스치는 말 한마디에 상처 받아 울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 감성과 감수성이라고 부를 만하던 것들도 무뎌지고, 굳어버린 해면 같은 상태가 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아주 천천히, 내가 가끔씩 삶을 뒤돌아보며 ‘그래, 나 어른이 되고 있어!’라고 즐겁게 곱씹을 때까지는 의식하지 못하도록 이루어졌다. 나는 이해할 수 없고 좋아하지 않는 많은 일들을 눈감아 줄만한 아량이 생겼고, 그만큼 내 삶은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되었다. 스물 세살, 착실하게 이 사회의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이었다.

2)경계인

남동생이라는 건 누나에 입장에서 전혀 도움이 되는 존재는 아니다. 일단 손 윗 형제와 비교해서 도움을 받을 여지라는 건 한없이 작다. 또한 여자 형제들이 가질 수 있는 유대 관계 같은 건 꿈도 꾸지 말아야한다. 어렸을 때 잠깐은 귀엽기는 하지만 이것은 곧 누나가 이가친척 및 어른들로부터 받던 사랑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그 정도는 누님의 아량으로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귀찮도록 뒤를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참견을 하고, 친구들과 나가 놀라치면 질척인다. 게다가 딱 부러지게 하는 건 왜 또 그렇게 없는지, 동네에서 맞고 들어오면 나가서 싸워 줘야하고, 학교에 입학하면 동생이라는 이유로 같이 혼나야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에는 부모님 대신 학부모 회의를 참석해야하는 일도 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서 이제 좀 이것저것 부려 먹을 만하면 키가 훌쩍 켜서 누나를 내려다본다. 이때 남동생이 대들기 시작하면 이것이 누나로서 느끼는 두 번째 위협이다. 그러나 이미 키는 크고 몸은 단단해진 동생을 더 이상 힘으로는 제압 할 수도 없다. 크면 나름대로 다 위안이 된다고들 하지만 남동생이라는 건 누나에게 결코 수지맞는 존재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남동생이, 그 존재를 증명이라도 해야겠다는 듯 집안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난 어렸을 때 곧잘 소리를 지르곤 했던 아빠 때문에 큰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큰소리를 들으면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서 심장만 벌렁벌렁하게 뛴다. 겁에 질리는 거다. 그런데 지금 약 1시간이 다 되도록 동생이 큰소리를 내고 있다. 아래층 거실에서 시작된 이 분쟁은 위층으로 올라와 지금 옆방에서 계속되고 있다.

나는 듣고 싶지도 않고 참견하고 싶지도 않다. 중학교 1학년 남동생과 엄마는 답이 나지 않을 이야기만을 계속하고 있다. 엄마는 어른의 논리로 이야기하고 동생은, 사춘기 청소년에게도 논리라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논리로 이야기하는데 말이 통할 리가 없다. 그리고 이건 그 사이에 끼여서 양쪽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내가 나선다고 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큰소리를 싫어하는 내가 소모적인 싸움을 실시간 중계로 들어야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 언제나 그랬듯이 가만히 있기에는, 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무력감이 훨씬 더 나를 짜증나게 한다.

복도를 지나서 다섯 걸음쯤, 방문 안으로 핏발로 얼굴이 벌게진 동생과 이제는 지겹고 힘이 없는 엄마의 표정이 보인다.

“둘 다 좀 그만 좀 해. 아, 진짜 듣기 지겨워!”

“뭔 상관이야, 뭘 안다고 그래?”

“뭘 알든 말든 뭔 상관인데, 알고 싶지도 않고. 너 지금 온 집안 시끄럽게 하는 건 생각도 안 해?”

“뭐 어쩌라고, 아, 사람 성질나게 하잖아”

“나도 성질나거든? 너 같은 거 진짜 이제 지겨워! 완전 다 지긋지긋해!”

남자 중학생 꼬마가 여자 대학생을 말로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말로만 한다면 한 학교 전체와 맞서도 두려울 게 없는 나였다. 결국,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 저 끝에 있던 동생이 문간으로 걸어 나온다. 말투부터 그랬듯이 걸음걸이도 온몸도 화가 났다고 말하고 있다. 문간에 삐딱하게 서있던 나를 스쳐지나가려는 찰나, 나는 동생의 팔목을 잡고 문을 가로 막는다.

“놔라”

힘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건 아니다. 이미 키는 나보다 십센치 이상 훌쩍 컸고 운동을 해 와서 배에는 근육이 잡혀있다. 가끔 내 동생이지만 이대로 크면 꽤 멋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뿌듯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힘으로 밀리자, 왠지 당황스럽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될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이 빠르게 스쳤고, 나는 본능적으로 손톱을 세워서 동생을 누른 뒤 있는 힘껏 동생을 방안으로 밀어 넣었다.

“너, 지금, 얘기, 안 끝났잖아”

“너네 지금 어른 앞에 두고 뭐하는 거야?”

힘을 주면서 말해 내 목소리엔 온통 힘이 들어갔고, 예견치 않은 남매의 육박전을 본 엄마는 그제야 큰소릴 낸다. 동생이 넘어졌는지 서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마지막까지 분을 못 풀고 씩씩거렸다는 게 기억이 난다. 끝까지 질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한마디를 남기고 곱게 내방으로 돌아왔다.

“저 지긋지긋한 새끼.......”

동생도 분을 못 참고 씩씩 거리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 소리가 꽝하고 들렸고 앞방의 진동이 내 방문까지 흔들리게 했다. 그리고 옆방에서는 엄마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이제 집안은 조용해졌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방으로 돌아와 앉았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한 번에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대학교 삼학년 그러니까 스물 세살 여자의 사회에서 남의 팔목을 손톱으로 잡아뜯을만한 일은 거의 없다. 여자학교만 세 차례 연거푸 다니고 있는 나로서는 길가가 아니면, 싸움은 구경할 일도 없다. 그런데 다 큰 동생과 싸움질이라니... 큰소리조차 싫어하는 나로서는 심장이 두근거려도 어쩔 수 없다.

건너편 방안에서 들리는 부서지는 소리, 뭘 던지는 건지 운동이라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지금보다 부모님이 한 것 엄했던 나의 사춘기 때, 나는 방문도 세게 닫지 못했고 화가 난다고해서 음악을 시끄럽도록 크게 틀어본 적도 없다. 방문을 조심이라도 크게 닫았다가는 다시 불려나와 혼나야 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해서, 아무리 화가 나도 그것만은 조심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우습게도, 자유롭게 사춘기의 반항을 만끽하는 동생에게 조금 억울한 심정이었다.

사춘기의 나는 어른들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어른이라면서 분명히 겪었을 사춘기를 왜 기억하지 못하는지, 왜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나를 품어주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왜 이렇게 행동하는 지 그 이유를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나에게 아무도 묻지 않고 정해버리는 것이 답답했다. 누군가가 물어보리라는 기대마저 저버리게 됐을 때, 생각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꼭 아이들을 대변해 주리라고.

지금도 동생의 입장이, 동생이 왜 그러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막연한 짜증이 배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굳이 찾자면 멀지 않다. 학교에 다녀오면 하루 종일 혼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외롭다든 지, 친구들이 신는 운동화가 자신은 없어서, 엄마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서 충분히 돌아보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춘기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성립된다.

(더 재밌는 것은 앞의 논리와 함께 자신은 이제 다 컸으니까 어른의 돌봄은 필요 없고,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는 논리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때는 내 논리에서 어떤 모순이나 허점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어른들의 논리의 허약함에 비하면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짜증을 기초적으로 깔고 있는데, 엄마가 늦게 들어온다고 잔소리를 한다. 동생은 엄마가 마음대로 컨트롤 하려고 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엄마의 룰을 강요한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때 다시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이거다. ‘나한테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러다보면 관심이 아닌 관섭을 한다고 느끼게 되고, 결국은 폭발한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고, 한 시간 내내 소리치는 동생의 주장을 들으면서 이해하고 있었다. 동생은 지금 엄마가 말하고 있는 귀가 시간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 이전에 더 기초적이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거나 혹은 물었다는 것에 화를 내느라고 엄마와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

엄마는 정말 이런 사춘기 때의 경험들을 모두 잊었기 때문에 동생과 대화하지 못한 걸까? 엄마는 계속 동생이 말하고 있는 것들이 오직 논점에서 벗어났다는 것과, 단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래서 동생은 더더욱 화를 냈고 결국은 나를 그 방으로 뛰어 들어가게 만들었다. 스물 세 살의 나는 엄마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리고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하지만 나는 사춘기 그들에게 아직도 공감하고 그들의 논리를 기억하고 있다.

내 사춘기 시절까지 생각이 다다르고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자, 문득 동생의 팔목이 궁금해진다. 있는 힘껏 쥐었으니 아무리 힘없는 누나라고 해도 아프긴 했을 텐데. 그리고 내가 그렇게 동생을 방으로 밀어 넣은 이유가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서였기 보다는 동생이 누나인 나를 무시하고 나가려고 했던 것, 그리고 동생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걸 깨닫고 나니 울적해졌다.

그건 내가 그렇게나 무시하던 서열싸움이었고, 사춘기 때 그렇게 증오하던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쯤 건넌방에서 동생은, 내가 하던 그대로 지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비웃으며 증오하고 있을 거다. 사춘기 때는 지는 것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그 모습을 비웃었고, 정말로 약하기 때문에 인정하기 못한 거라고 간주했다. 정말 강한 자는 패배도 인정할 줄 아는 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리라 결심했다. 그러면 나의 모습과 위치, 용기를 인정받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보장되지 못한 인정 보다는 억지승리를 택했다. 살아보니 그렇더라고, 패배를 인정하고도 살아남는 멋진 모습을 보지 못해서 두렵다고 말하면 왠지 그건 변명일 것만 같다. 더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앞으로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는 사실이다.

이쪽의 입장도 저쪽의 입장도 이해하고 있는 나로서는, 사춘기보다 더 경계인이 된 느낌이다. 중학교 가정교과서에서 사춘기를 설명하는 특성 중에 하나였다. 사춘기의 청소년은 어른도 아이도 아닌 경계선에 서 있어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사춘기의 나는 어른도 아이도 아니라서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 나는 어떤 편에 목소리를 더해야할지 혼란스럽다.

동생은 방에서 거실로 내려오지 않은 채, 남은 식구들은 저녁을 먹었다. 집에서 큰소리가 난 후라 아빠의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아빠가 큰소리를 내지 않았으니 괜찮다. 나는 혼란스럽고 우울한 기분에 괜히 설거지를 하는 엄마 곁을 왔다갔다, 물을 마시고 있었다.

“재민이, 팔에 피 맺혔더라.”

엄마의 말에 왠지 내 심장에도 손톱자국이 나는 것 같아서 나는 “그러게 누가 덤비래?”라고 한마디 쏘아 붙이고는 방으로 올라왔다. 나는 어쩌면 아직도 사춘기에 가까운가 보다. 그리고 어른이라는 건, 오늘의 나처럼 치사하고 답답하기만 한 게 아니라 지금의 엄마처럼 가장 억울해야하는 입장일지도 모른다.

엄마와 동생이 싸웠는데 내가 몽땅 뒤집어쓴 것 같이 찝찝했다. 어른인 엄마와 사춘기 동생, 둘에게 모두 미안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그렇게 동생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 지긋지긋하다는 그 말을 내 동생이 아닌, 나를 오랫동안 괴롭힌 사춘기와 그 논리에다가 퍼부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은 아주 한참 후에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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