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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어설픈 위로는 집어치워라 머저리들아. 오늘 아침, 엄마는 자고 있는 내 방문을 열고 단호박 찐 것과 삶은 달걀을 사식처럼 넣고 집을 나섰고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안돼 아빠가 벌컥 내 방문을 열었다가 날 발견하고 놀라 문을 닫았다. 특별할 것 없는 주말의 일상일 수도 있겠지만 행간을 읽는다면 다른 이야기다. 첫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냉장고가 멈춰버린 집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없고, 며칠째 나와 신나게 싸우고 있는 엄마는 어젯밤일이 미안해서 내게 먹을 것을 좀 주어야겠는데 거실에 두었다가는 아빠가 다 먹어치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꼭 이럴 때만 나오는 다정하고 미안한 얼굴로 남몰래 사식을 넣듯 내 방에 구호물품을 넣어줬다. 둘째, 내가 잦은 성희롱과 말바꿈 등에 지쳐 퇴사하며 받아온 견과 60봉 셋트를 온 가족이 드나들며 집어.. 더보기
# 아빠와 나와 이선희 아빠는 이선희를 좋아한다고 했다. 아빠는 이선희의 노래도 좋아했지만 이선희도 좋아해서 엄마에게 그 같은 단발머리를 몇번이나 권했다고 했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몇번이나 했고, 언젠가는 아빠 앞에서 이 이야기를 하며 아빠를 흘겨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어렸음에도 좋아하는 여가수의 머리를 권하는 아빠의 행동이 퍽 우습다고 생각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흘기면서 이야기하는 엄마와 못들은 척 웃어 넘기는 아빠의 모습은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남았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 한쪽이 아련해졌고, 가끔 검은 단발머리를 볼때, 이선희를 닮은 고모 만났을 때, 이선희의 노래를 들을때마다 그랬다. 그래서 이선희의 신곡을 꼼꼼히 듣고 정말 좋다고 느꼈을 때, 아빠 생각이 났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안방에 있는.. 더보기
#꿈 - 뉴질랜드에 가다 주기적으로 꾸는 꿈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뉴질랜드에 가는 꿈이다. 약간씩 각색되긴하지만 꿈에서 나는 내가 살던 동네에 간다. 마을에서 가장 번화한 골목을 바로 앞 바다, 해변을 따라서 기차가 다니는 그림 같은 풍경. 바다를 등지고 언덕을 오르면 카페와 가게를 지나 사람 사는 동네가 나온다. 꿈에서 나는 언제나 배를 타고 그곳에 간다. 내리자마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서 언덕 꼭대기에 있는 허름한 성당으로 향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가 다시 출발하기 전 그 촉박한 시간동안 성당에 꼭 들어가고 싶어한는데 숨차게 달려는 게 급해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토록 그리워하는 이들의 차가운 시선이 두려워 피하는 지도 모른다. 마음 졸이며 달려가다가 배 시간 때문에 돌아오며 원.. 더보기
# 아빠와 나 그날을 기억하면 집안 공기가 떠오른다. 계절은 늦 여름이나 가을 즈음 같았고 저녁 시간에 불을 켜지 않은 집안은 어둑어둑 해졌다. 컴컴하면서도 붉은 기운이 맴돌던 좁은 부엌에서 밖으로 나있는 창을 내다보았다면 타는 듯이 지는 노을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기억 속의 나는 창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나는 노을을 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형광등을 켤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아. 나는 아직 학교에 들어 가지 전이었고, 내 동생은 나보다 어렸다. 엄마가 왜 아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갑자기 쓰러져서는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방에서 앓고 있는 엄마 곁에도 가지 못하고 방문 밖, 부엌에서 겁에 질린 동생과 앉아 있었다. 집이 좁았다. 엄마의 신음 소리만 들리는 어두워진 거실에서 겁도 먹지 .. 더보기
# 불안 지금의 애인은 내게 참 잘해준다. 이젠 애인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린 잘 어울리니까!'라는 말이 내 입에서 장난처럼 나오는데, 그 순간들을 보면 참 신기하고, 그 신기함이 더 없이 즐겁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그 사실을 편안하게 시인할 정도로 안정감을 느끼고 있구나.'를 단번에 느끼게 해주는 그 장난은 언제나 즐거워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처럼 꺄르르 웃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리고 내 불안은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첫사랑을 앓았다. 처음으로 내 세상이 타인으로 인해서 재구성 되어서 온전히 다른 세상에 살아보았고 그 세상이 산산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붕괴는 상대 쪽에서부터 일어났는데 감정이 없는 지겨워하는 눈빛 앞에서 나는 쩔쩔매며 울기만 했다... 더보기
출사표 나는 이기적이라서 결국 내가 가장 관심이 있고 잘 아는 건 내 자신이니까, 하고 싶은 말이 가장 많은 건 내 자신에 대해서니까, 내 이야기를 실컷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내와 닮은 타인을 나에게 비추어 볼 수 있다면 타인이 또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 누가 관심을 가져야만 떠들 수 있나? 어제 본 영화의 주인공 말처럼 "나는 계속 이야기 할 거다." 누군가가 듣던지 말던지 궁금해하던지 말던지, 나는 여기에 있으니까 이야기 하겠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자기소개서를, 회고록을, 자기개발서를, 사용설명서를 나는 여기에 쓰겠다. 검고 싶은 내 심연의 바닥까지, 성찰하며 파보자. 더보기
[단편] strawberry fields forever 그녀가 말했다. “너는 여자를 너무 좋아해.” 그는 말했다. “나는 사람이 좋아, 혼자 있는 게 싫어, 그러니까 나는 사실 외로움을 못 견디는 거야.” 그녀는 동의했다, 그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 있지 못한다는 것을. 고향 땅을 떠난 타지에서, 모두들 비슷비슷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그의 집에서는 매일 같이, 아니 하루걸러 하루씩 파티가 벌어지곤 했다. 누군가의 환영 파티, 또 다른 누군가의 송별 파티, 가끔은 생일 파티, 그리고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하고 작은 이유의 파티들로 그의 집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들끓었다. 그리고 파티가 없는 그 하루걸러 하루조차, 그는 혼자이고 싶지 않아했다. 그의 집 근처에 사는 세 사람의, 굳이 파티라고 부르려면 부를 수 있는 작은 모임. 때로는 운동을.. 더보기
엄마가 사라진다면 친구들과 함께 천진하게 웃게 되는 때에도, 일 없이 찾아간 조교실에서 첫눈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겨울에도, 나는 내가 그 순간을 그리워할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는 슬픔이 천연하게 맺힌다. 순수히 슬픔에 잠기는 그 순간에도 그 기억이 행복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엄마와 함께하는 순간에서 그런 행복이 점점 찾아온다. 늦잠을 자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응석을 부리고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상을 받으면서 농담을 주고받을 때, 저녁을 먹고 함께 아이돌을 보면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수다를 떨 때, 자기 전에 누워서 가만가만 사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순간이 마치 내가 본 영화처럼 기억되어 나는 슬프다.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나는 영원히 그 순간을 그리고 나와 함께 밥.. 더보기
사춘기는 끝났다 1) 사춘기는 끝났다. 사춘기는 끝났다. 그것은 내가 더 이상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원망하며 증오하지 않는 다는 이야기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어른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던 내 생각이 꼭 내가 바라던 방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는 용서할 수 없어 눈물을 뚝뚝 흘리고 내가 저 자리에 서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리라, 힘없는 자신을 미워하며 입술만 물고 서 있던 일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끔은 이해 할 수 없던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의 몇 번 그들의 입장에 서기도 했으니 가끔은 그 때의 내가 귀엽기도 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