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꾸는 꿈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뉴질랜드에 가는 꿈이다. 약간씩 각색되긴하지만 꿈에서 나는 내가 살던 동네에 간다. 마을에서 가장 번화한 골목을 바로 앞 바다, 해변을 따라서 기차가 다니는 그림 같은 풍경. 바다를 등지고 언덕을 오르면 카페와 가게를 지나 사람 사는 동네가 나온다. 


 꿈에서 나는 언제나 배를 타고 그곳에 간다. 내리자마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서 언덕 꼭대기에 있는 허름한 성당으로 향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가 다시 출발하기 전 그 촉박한 시간동안 성당에 꼭 들어가고 싶어한는데 숨차게 달려는 게 급해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토록 그리워하는 이들의 차가운 시선이 두려워 피하는 지도 모른다. 마음 졸이며 달려가다가 배 시간 때문에 돌아오며 원통해하거나 머리 뒤로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데 시계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게 전부로 성당에 도착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달리면서 마음을 졸이고 사람들의 비난에 의연한 척하느라 끊임없이 마음이 에일 뿐이다.
 
 딱 한번 성당에 도착한 적이 있다. 머리서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모습은 사라지고 켜켜이 먼지를 뒤집어써 무슨 색인지 알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소리도 없이 무너질 것 같은 폐허였다. 도착하기만 하면 나를 기다리는 가장 그리운 누구날도 있을 줄 았았는데, 간절하고 애틋하게 성당에 당도하고 싶어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애가 탔다. 커다란 자물쇠는 몇번 만지작거리니 의외로 쉽게 풀렸고 들어갔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 애인이 그 꿈에 나온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그랑자드 섬의 일요일 오후를 누리는 아가씨처럼 드레스를 입고 망사 장갑과 양산까지 받쳐 들고는 애인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도착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도착해야 할 시간을 알게 됐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우아하고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부두 주변을 거닐면서 동네를 소개하고, 가보고 싶었던 성당의 이야기를 했다. 손톱 만하게 보이는 검은 건물을 올려다보면서. 

  
 그리고 어제 그 꿈을 꾸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그 성당에 가고 싶지 않았다.  혼자 도착한 두부에서 숨이차게 달리는 대신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나는 처음으로 잊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 손을 붙잡고 인사를 했고 그들은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느라 내게 인사할 시간도 없었다. 여전히 나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의연했고 사실 그건 당연히 그런 일이었다. 그리고 깨고 나서 아마 다시는 적어도 한동안은 그 꿈을 꾸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그토록 애달프게 그리워하는 그 곳은 없었다. 그리고 나를 애달프게 한 이도 이젠 없다. 꿈처럼 아름다운 마을에는 해변이 있고 기차가 있고 언덕이 있지만, 가끔 고기 배가 들어와 생선을 쏟아 놓을 뿐 여객선이 드나들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안달하던 성당이 있는 자리엔 내가 다녔던 작은 교회가 있다. 내가 무엇을 그토록 되찾고 싶어서 안달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서서히 놓아가는지 꿈을 통해서 짐작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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