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쓰다/쓰자마음의말들을 | 3 ARTICLE FOUND

  1. 2014.06.14 나의 뮤지컬 수업
  2. 2013.11.21 #꿈 - 뉴질랜드에 가다
  3. 2011.11.20 엄마가 사라진다면 (1)

 

 

나는 흔한 취업준비생이고 별 볼일 없는 백수인데, 딱히 그럴싸한 이유나 대단한 뜻을 가졌기 때문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고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기관의 해외인턴도 다녀왔는데 그 뒤로 어쩐지 일이 풀리지 않아 무한 대기 상태에 돌입한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취준생. 절망하고 자괴하는 일도 익숙해져 그저 상황을 납득한 채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취직에 힘쓰는 중인데, 이렇게 평범하고 별 볼일 없는 내 생활 중 눈 여겨볼 만한 행보가 하나 있다면 그건 매주 토요일 뮤지컬 수업에 가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날 '생각하는 시민'으로 키우고 싶으셨다는데, 이게 깨어있는 시민을 주창하는 김어준씨가 나오기 20년쯤 전 목표라는 걸 생각하면 꽤 고무적이다. 시민이라면 응당 악기하나 쯤은 다루고 예술을 음미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는지 나는 없는 살림에도 피아노를 체르니 30번까지 배웠고, 생일 선물로 예술의 전당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 1년 정기권 티켓을 선물 받는 어린시절를 보냈다.

 

엄마가 이런 노력을 하면서 간과한 것은 내가 폭발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린 나는 폭발적인 감수성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는데 나의 애청곡은 '엄마 나 살고 싶어요'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노래를 였고, 만화 플란더스의 개의 결말 때문에 대성통곡을 하다 유치원을 결석했고, 좀 더 자라 사춘기가 되서는 두시간짜리 뮤지컬을 보는 내내 우는 통에 직원이 따로 쫓아와 안부를 묻는일도 있었가. 이런 내 감수성은 엄마의 예술 교육과 만나 전혀 엉뚱한 결과를 도출해냈는데, 나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다.

 

철썩같이 그 꿈을 믿고, 삶의 모든 이유를 거기 두며 노력한 시간이 있었다. 예고에 가고 싶었지만 시험도 보지 못했고 연기학원 대문 도 구경한 적이 없었지만 단 한번도 안될 거라 생각하지 않다. 그러다가 결국 연극영화과 입시도 치뤄보지 못하고 대학생이 됐을때, 나는 그제서야 집에 있는 모든 자료를 버리고, 공연장에 발길을 끊고, 내가 정한 다른 방향만을 보고 걸어갔다. 이제까지 눈을 돌리면 꿈이 꺽이고 흔들릴까 두려워했던 것처럼, 이제는 다시 그 길에 눈을 돌렸다 꿈꾸게 될까 두려웠다.

 

가끔씩 티비에 노래나 춤, 그게 무엇이든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선택하고 노력는 또래가 나오면 무병을 앓듯이 몇일을 시달렸다. 그 반짝이는 꿈과 괴롬의 아름다운 감탄했다. 그러면서도 내것이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일이 내겐 너무 괴로웠고, 동시에 눈을 뗄 수 없이 매혹적이었다. 이뤄낸 것이 아니라 이뤄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부아가 났고 온몸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나는 취미로도 그일을 할 수 없었다. 진지하게 하지 않을거라면 하기 싫은 오만이 있었고, 가볍게 시작했다가 다시 온 인생을 걸고 싶어질까봐 겁이났다. 정말 하고 싶었던 옛 소망이 두려워져서 공연 하나 마음 놓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시작은 단순했다. 친한 친구의 뮤지컬 수업에 빈자리가 생겼고 삶이 너무 답답해서 뭐라도 하려던 내게 그 소식이 닿았다. 지르는 마음으로 결심을 한 뒤 입금을 했고 수업에 나갔다. 그동안의 모든 두려움이 허탈할만큼 내 삶은 무너지지 않았고 나는 괴롭지 않았으며 노래는 즐겁고 연기는 행복했다. 내 수준과 실력은 논외로 하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오직 나의 즐거움만을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노래하고 소리내고 움직이고 악보를 읽고 연기하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게다가 내 안에 내가 모르고 있던, 잃어버린 수많은 나 자신이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매일을 새롭게 했다. 

 

오늘 8주차 수업이 지났다. 나는 첫노래 인어공주를 끝내고 이선희의 새로운 노래를 부른다. 녹음을 들어보면 여전히 들어줄만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진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저 지난 주의 나보다 잘하겠다는 내 목표는 성취됐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정체되어 고여있는 나 자신이지만 나는 분명 노력하고 있고 또 성장하고 있다. 내가 가장 하고 싶던 그 분야에서.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던 일을 어떤 형태로나마 시작한 것, 이건 분명히 내 평생 가장 잘한 결심 중 하나가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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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적으로 꾸는 꿈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뉴질랜드에 가는 꿈이다. 약간씩 각색되긴하지만 꿈에서 나는 내가 살던 동네에 간다. 마을에서 가장 번화한 골목을 바로 앞 바다, 해변을 따라서 기차가 다니는 그림 같은 풍경. 바다를 등지고 언덕을 오르면 카페와 가게를 지나 사람 사는 동네가 나온다. 


 꿈에서 나는 언제나 배를 타고 그곳에 간다. 내리자마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서 언덕 꼭대기에 있는 허름한 성당으로 향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가 다시 출발하기 전 그 촉박한 시간동안 성당에 꼭 들어가고 싶어한는데 숨차게 달려는 게 급해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토록 그리워하는 이들의 차가운 시선이 두려워 피하는 지도 모른다. 마음 졸이며 달려가다가 배 시간 때문에 돌아오며 원통해하거나 머리 뒤로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데 시계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게 전부로 성당에 도착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달리면서 마음을 졸이고 사람들의 비난에 의연한 척하느라 끊임없이 마음이 에일 뿐이다.
 
 딱 한번 성당에 도착한 적이 있다. 머리서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모습은 사라지고 켜켜이 먼지를 뒤집어써 무슨 색인지 알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소리도 없이 무너질 것 같은 폐허였다. 도착하기만 하면 나를 기다리는 가장 그리운 누구날도 있을 줄 았았는데, 간절하고 애틋하게 성당에 당도하고 싶어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애가 탔다. 커다란 자물쇠는 몇번 만지작거리니 의외로 쉽게 풀렸고 들어갔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 애인이 그 꿈에 나온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그랑자드 섬의 일요일 오후를 누리는 아가씨처럼 드레스를 입고 망사 장갑과 양산까지 받쳐 들고는 애인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도착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도착해야 할 시간을 알게 됐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우아하고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부두 주변을 거닐면서 동네를 소개하고, 가보고 싶었던 성당의 이야기를 했다. 손톱 만하게 보이는 검은 건물을 올려다보면서. 

  
 그리고 어제 그 꿈을 꾸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그 성당에 가고 싶지 않았다.  혼자 도착한 두부에서 숨이차게 달리는 대신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나는 처음으로 잊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 손을 붙잡고 인사를 했고 그들은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느라 내게 인사할 시간도 없었다. 여전히 나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의연했고 사실 그건 당연히 그런 일이었다. 그리고 깨고 나서 아마 다시는 적어도 한동안은 그 꿈을 꾸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그토록 애달프게 그리워하는 그 곳은 없었다. 그리고 나를 애달프게 한 이도 이젠 없다. 꿈처럼 아름다운 마을에는 해변이 있고 기차가 있고 언덕이 있지만, 가끔 고기 배가 들어와 생선을 쏟아 놓을 뿐 여객선이 드나들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안달하던 성당이 있는 자리엔 내가 다녔던 작은 교회가 있다. 내가 무엇을 그토록 되찾고 싶어서 안달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서서히 놓아가는지 꿈을 통해서 짐작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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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천진하게 웃게 되는 때에도, 일 없이 찾아간 조교실에서 첫눈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겨울에도, 나는 내가 그 순간을 그리워할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는 슬픔이 천연하게 맺힌다. 순수히 슬픔에 잠기는 그 순간에도 그 기억이 행복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엄마와 함께하는 순간에서 그런 행복이 점점 찾아온다. 늦잠을 자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응석을 부리고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상을 받으면서 농담을 주고받을 때, 저녁을 먹고 함께 아이돌을 보면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수다를 떨 때, 자기 전에 누워서 가만가만 사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순간이 마치 내가 본 영화처럼 기억되어 나는 슬프다.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나는 영원히 그 순간을 그리고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잠을 잤던 엄마를 그리워 할 것이다.


다른 기억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행복한 종류의 것이라면, 나에게 엄마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두렵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내가 그 일상적인 순간들을 엄마라는 아무렇지 않던 존재를 이렇게 매 순간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이 또한 두렵다. 나는 어쩌면, 비로소, 벌써부터, 엄마가 나를 떠나가리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순간이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진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내 답답함을 호소한다. 머리가 굵어진 딸은 엄마의 잘잘못을 따지려들지만 게으른 몸을 움직여 엄마를 돕는데는 더디다. 한편으로는 마음에 걸린다. 이러다가 후회하겠지라고. 그렇게 한순간 생각하다가도 그렇지만 아직은 엄마가 내 곁에 있으므로 -문득 바라본 얼굴이 예전과는 다르더라도, 그래서 가끔은 괜히 서글프더라도- 나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 세상을 변하지 않는다. 상상하기 싫은 어느 날이 오면 내 세상은 와르르 무너지고 나는 세상의 모든 딸들처럼 후회할 거다. 혹은 다시 한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살아지거나.



2011년 1월 말레이시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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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미소 2012.06.15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울과 고통에 민감하다는 사실이 어떤 건지 잘 아는지라 많이 공감하구요, 크래님 블로그 오픈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