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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쓰자마음의말들을

엄마가 사라진다면


친구들과 함께 천진하게 웃게 되는 때에도, 일 없이 찾아간 조교실에서 첫눈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겨울에도, 나는 내가 그 순간을 그리워할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는 슬픔이 천연하게 맺힌다. 순수히 슬픔에 잠기는 그 순간에도 그 기억이 행복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엄마와 함께하는 순간에서 그런 행복이 점점 찾아온다. 늦잠을 자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응석을 부리고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상을 받으면서 농담을 주고받을 때, 저녁을 먹고 함께 아이돌을 보면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수다를 떨 때, 자기 전에 누워서 가만가만 사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순간이 마치 내가 본 영화처럼 기억되어 나는 슬프다.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나는 영원히 그 순간을 그리고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잠을 잤던 엄마를 그리워 할 것이다.


다른 기억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행복한 종류의 것이라면, 나에게 엄마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두렵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내가 그 일상적인 순간들을 엄마라는 아무렇지 않던 존재를 이렇게 매 순간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이 또한 두렵다. 나는 어쩌면, 비로소, 벌써부터, 엄마가 나를 떠나가리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순간이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진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내 답답함을 호소한다. 머리가 굵어진 딸은 엄마의 잘잘못을 따지려들지만 게으른 몸을 움직여 엄마를 돕는데는 더디다. 한편으로는 마음에 걸린다. 이러다가 후회하겠지라고. 그렇게 한순간 생각하다가도 그렇지만 아직은 엄마가 내 곁에 있으므로 -문득 바라본 얼굴이 예전과는 다르더라도, 그래서 가끔은 괜히 서글프더라도- 나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 세상을 변하지 않는다. 상상하기 싫은 어느 날이 오면 내 세상은 와르르 무너지고 나는 세상의 모든 딸들처럼 후회할 거다. 혹은 다시 한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살아지거나.



2011년 1월 말레이시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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