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엄마는 자고 있는 내 방문을 열고 단호박 찐 것과 삶은 달걀을 사식처럼 넣고 집을 나섰고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안돼 아빠가 벌컥 내 방문을 열었다가 날 발견하고 놀라 문을 닫았다. 특별할 것 없는 주말의 일상일 수도 있겠지만 행간을 읽는다면 다른 이야기다.

 

첫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냉장고가 멈춰버린 집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없고, 며칠째 나와 신나게 싸우고 있는 엄마는 어젯밤일이 미안해서 내게 먹을 것을 좀 주어야겠는데 거실에 두었다가는 아빠가 다 먹어치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꼭 이럴 때만 나오는 다정하고 미안한 얼굴로 남몰래 사식을 넣듯 내 방에 구호물품을 넣어줬다. 둘째, 내가 잦은 성희롱과 말바꿈 등에 지쳐 퇴사하며 받아온 견과 60봉 셋트를 온 가족이 드나들며 집어먹으라고 거실에 뒀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남들 손대기도 전에 아빠가 홀랑 절반 이상을 먹어치웠다. 나는 그저 어이가 없었고 엄마는 거실에 둔 내 잘못이라며 내 방에 견과를 치워놨는데, 아빠는 방이 빈 줄 알고 이걸 가지러 살금살금 왔다가 내가 아직 방에 있는 걸 보고 놀라서 돌아나갔다.

 

참 별것 아닌 일이 참 복잡하다. 가정불화나 가난에 같은 일은 늘 이런 식으로 아주 일상적인 일들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쓸데없는 함의가 많아 소모적이다. 이런 건 유사한 경험하지 못한 이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종종 마주하는 것만으로 지치고 피곤한 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해명하거나 설명해야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나를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이게 무엇인지 경험적으로 알면서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대응 하거나 어설프게 위로하며 내 입을 막는 이들이다.

 

그래, 아빠가 나를 걱정하거나 깨우려고 내 방에 왔을 수도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나는 왜 도대체 몇 해만에 아빠가 나를 걱정하고 동시에 돌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심지어 그 의지를 실행하려 했는지, 도대체 무슨 깨달음이 그를 적어도 반년이상 출입하지 않던 이층으로 발걸음 하게 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21세기 서울을 배경으로 전기 없이 살게 된 일련의 사태가 무책임한 그의 행동이 피운 절정 부분이고, 그 후에도 방에서 혼자 노트북을 하며 즐기기 위해 전등 3개정도 켤 최소전력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가 했던 노력, 내가 온수를 틀었을 때 그 노트북이 꺼질까봐 내가 냈던 짜증 등의 모든 행동을 합리화해야 한다. 나는 우선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그럴 의지가 없다. 아무리 가혹하고 잔인해서 내 속을 뒤집어놓은 현실이라도 나는 직시해야하고 그래야 이 진흙탕 속에서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그래도 아버지가 정정하게 살아계심에 감사하라는 당신에게 해 줄 말은 하나다. 좋은 가부장은 죽은 가부장뿐이다. 내 측근은 가끔 나에게 굉장히 가부장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아련하게 추억한다. 매일매일 아버지가 주는 괴로움에 시달리는 내가 그를 괴로워하지도 무례하게 느끼지도 않는 것은 그가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셨다면 나는 아직도 싸웠을 거야”하고 말하기 때문이고 내게 ‘너도 살아계실 때 잘해두라’ 따위의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아련함이 미화된 기억이든 애증의 산물이든 나는 그것에 대해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내게 당신의 결핍과 소망을 강요하지 마라. 당신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고 당신은 내가 아니다. 내 아버지가 죽고 나면 그때 내가 그리워하고 애도하고 추억할 것이다.

 

내 괴롬과 슬픔이 대단히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아니고 내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유사한 경험을 했다고 해도 우리의 아픔은 크게 다르다. 그러니 아픔의 농도와 강도, 길이 기타 등등의 모든 비교는 무의미하다. 나는 내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 이유로 그의 모든 행동이 날 괴롭게 하고 나는 뿌리 채 흔들린다. 그렇지만 나는 내 사랑을 인질삼아 그를 포용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아닌 당신이 그 어떤 이유로든 내게 어떤 선택이나 감정, 혹은 사고를 강요할 수 없다. 당신은 내가 아니고,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위로를 바라고 글을 쓴 적이 없다. 그냥 숨을 쉬고 싶고 내 슬픔에 바닥까지 내려가고 나면 내 안에 부유하는 것들이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쓴다. 당신이 내 이야기에 공명한다면 기쁘게 생각하지만 그뿐이다. 나는 내 이야기와 감정을 계속해서 할 것이고 당신은 불편하다면 얼마든지 나를 외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제발 아는 척하면 건내는 그 어설픈 위로를 집어치워라 이 머저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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