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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또다른이야기

사춘기는 끝났다

1) 사춘기는 끝났다.

사춘기는 끝났다. 그것은 내가 더 이상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원망하며 증오하지 않는 다는 이야기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어른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던 내 생각이 꼭 내가 바라던 방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는 용서할 수 없어 눈물을 뚝뚝 흘리고 내가 저 자리에 서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리라, 힘없는 자신을 미워하며 입술만 물고 서 있던 일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끔은 이해 할 수 없던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의 몇 번 그들의 입장에 서기도 했으니 가끔은 그 때의 내가 귀엽기도 우습기도 했다.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이상 예민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처럼 매순간, 모든 감정에 충만한 채로 사물에 반응하지 못한다. 또한 언제나 긴장으로 온몸이 털끝까지 바짝 서서 스치는 말 한마디에 상처 받아 울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 감성과 감수성이라고 부를 만하던 것들도 무뎌지고, 굳어버린 해면 같은 상태가 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아주 천천히, 내가 가끔씩 삶을 뒤돌아보며 ‘그래, 나 어른이 되고 있어!’라고 즐겁게 곱씹을 때까지는 의식하지 못하도록 이루어졌다. 나는 이해할 수 없고 좋아하지 않는 많은 일들을 눈감아 줄만한 아량이 생겼고, 그만큼 내 삶은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되었다. 스물 세살, 착실하게 이 사회의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이었다.

2)경계인

남동생이라는 건 누나에 입장에서 전혀 도움이 되는 존재는 아니다. 일단 손 윗 형제와 비교해서 도움을 받을 여지라는 건 한없이 작다. 또한 여자 형제들이 가질 수 있는 유대 관계 같은 건 꿈도 꾸지 말아야한다. 어렸을 때 잠깐은 귀엽기는 하지만 이것은 곧 누나가 이가친척 및 어른들로부터 받던 사랑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그 정도는 누님의 아량으로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귀찮도록 뒤를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참견을 하고, 친구들과 나가 놀라치면 질척인다. 게다가 딱 부러지게 하는 건 왜 또 그렇게 없는지, 동네에서 맞고 들어오면 나가서 싸워 줘야하고, 학교에 입학하면 동생이라는 이유로 같이 혼나야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에는 부모님 대신 학부모 회의를 참석해야하는 일도 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서 이제 좀 이것저것 부려 먹을 만하면 키가 훌쩍 켜서 누나를 내려다본다. 이때 남동생이 대들기 시작하면 이것이 누나로서 느끼는 두 번째 위협이다. 그러나 이미 키는 크고 몸은 단단해진 동생을 더 이상 힘으로는 제압 할 수도 없다. 크면 나름대로 다 위안이 된다고들 하지만 남동생이라는 건 누나에게 결코 수지맞는 존재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남동생이, 그 존재를 증명이라도 해야겠다는 듯 집안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난 어렸을 때 곧잘 소리를 지르곤 했던 아빠 때문에 큰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큰소리를 들으면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서 심장만 벌렁벌렁하게 뛴다. 겁에 질리는 거다. 그런데 지금 약 1시간이 다 되도록 동생이 큰소리를 내고 있다. 아래층 거실에서 시작된 이 분쟁은 위층으로 올라와 지금 옆방에서 계속되고 있다.

나는 듣고 싶지도 않고 참견하고 싶지도 않다. 중학교 1학년 남동생과 엄마는 답이 나지 않을 이야기만을 계속하고 있다. 엄마는 어른의 논리로 이야기하고 동생은, 사춘기 청소년에게도 논리라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논리로 이야기하는데 말이 통할 리가 없다. 그리고 이건 그 사이에 끼여서 양쪽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내가 나선다고 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큰소리를 싫어하는 내가 소모적인 싸움을 실시간 중계로 들어야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 언제나 그랬듯이 가만히 있기에는, 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무력감이 훨씬 더 나를 짜증나게 한다.

복도를 지나서 다섯 걸음쯤, 방문 안으로 핏발로 얼굴이 벌게진 동생과 이제는 지겹고 힘이 없는 엄마의 표정이 보인다.

“둘 다 좀 그만 좀 해. 아, 진짜 듣기 지겨워!”

“뭔 상관이야, 뭘 안다고 그래?”

“뭘 알든 말든 뭔 상관인데, 알고 싶지도 않고. 너 지금 온 집안 시끄럽게 하는 건 생각도 안 해?”

“뭐 어쩌라고, 아, 사람 성질나게 하잖아”

“나도 성질나거든? 너 같은 거 진짜 이제 지겨워! 완전 다 지긋지긋해!”

남자 중학생 꼬마가 여자 대학생을 말로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말로만 한다면 한 학교 전체와 맞서도 두려울 게 없는 나였다. 결국,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 저 끝에 있던 동생이 문간으로 걸어 나온다. 말투부터 그랬듯이 걸음걸이도 온몸도 화가 났다고 말하고 있다. 문간에 삐딱하게 서있던 나를 스쳐지나가려는 찰나, 나는 동생의 팔목을 잡고 문을 가로 막는다.

“놔라”

힘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건 아니다. 이미 키는 나보다 십센치 이상 훌쩍 컸고 운동을 해 와서 배에는 근육이 잡혀있다. 가끔 내 동생이지만 이대로 크면 꽤 멋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뿌듯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힘으로 밀리자, 왠지 당황스럽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될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이 빠르게 스쳤고, 나는 본능적으로 손톱을 세워서 동생을 누른 뒤 있는 힘껏 동생을 방안으로 밀어 넣었다.

“너, 지금, 얘기, 안 끝났잖아”

“너네 지금 어른 앞에 두고 뭐하는 거야?”

힘을 주면서 말해 내 목소리엔 온통 힘이 들어갔고, 예견치 않은 남매의 육박전을 본 엄마는 그제야 큰소릴 낸다. 동생이 넘어졌는지 서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마지막까지 분을 못 풀고 씩씩거렸다는 게 기억이 난다. 끝까지 질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한마디를 남기고 곱게 내방으로 돌아왔다.

“저 지긋지긋한 새끼.......”

동생도 분을 못 참고 씩씩 거리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 소리가 꽝하고 들렸고 앞방의 진동이 내 방문까지 흔들리게 했다. 그리고 옆방에서는 엄마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이제 집안은 조용해졌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방으로 돌아와 앉았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한 번에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대학교 삼학년 그러니까 스물 세살 여자의 사회에서 남의 팔목을 손톱으로 잡아뜯을만한 일은 거의 없다. 여자학교만 세 차례 연거푸 다니고 있는 나로서는 길가가 아니면, 싸움은 구경할 일도 없다. 그런데 다 큰 동생과 싸움질이라니... 큰소리조차 싫어하는 나로서는 심장이 두근거려도 어쩔 수 없다.

건너편 방안에서 들리는 부서지는 소리, 뭘 던지는 건지 운동이라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지금보다 부모님이 한 것 엄했던 나의 사춘기 때, 나는 방문도 세게 닫지 못했고 화가 난다고해서 음악을 시끄럽도록 크게 틀어본 적도 없다. 방문을 조심이라도 크게 닫았다가는 다시 불려나와 혼나야 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해서, 아무리 화가 나도 그것만은 조심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우습게도, 자유롭게 사춘기의 반항을 만끽하는 동생에게 조금 억울한 심정이었다.

사춘기의 나는 어른들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어른이라면서 분명히 겪었을 사춘기를 왜 기억하지 못하는지, 왜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나를 품어주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왜 이렇게 행동하는 지 그 이유를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나에게 아무도 묻지 않고 정해버리는 것이 답답했다. 누군가가 물어보리라는 기대마저 저버리게 됐을 때, 생각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꼭 아이들을 대변해 주리라고.

지금도 동생의 입장이, 동생이 왜 그러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막연한 짜증이 배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굳이 찾자면 멀지 않다. 학교에 다녀오면 하루 종일 혼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외롭다든 지, 친구들이 신는 운동화가 자신은 없어서, 엄마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서 충분히 돌아보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춘기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성립된다.

(더 재밌는 것은 앞의 논리와 함께 자신은 이제 다 컸으니까 어른의 돌봄은 필요 없고,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는 논리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때는 내 논리에서 어떤 모순이나 허점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어른들의 논리의 허약함에 비하면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짜증을 기초적으로 깔고 있는데, 엄마가 늦게 들어온다고 잔소리를 한다. 동생은 엄마가 마음대로 컨트롤 하려고 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엄마의 룰을 강요한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때 다시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이거다. ‘나한테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러다보면 관심이 아닌 관섭을 한다고 느끼게 되고, 결국은 폭발한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고, 한 시간 내내 소리치는 동생의 주장을 들으면서 이해하고 있었다. 동생은 지금 엄마가 말하고 있는 귀가 시간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 이전에 더 기초적이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거나 혹은 물었다는 것에 화를 내느라고 엄마와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

엄마는 정말 이런 사춘기 때의 경험들을 모두 잊었기 때문에 동생과 대화하지 못한 걸까? 엄마는 계속 동생이 말하고 있는 것들이 오직 논점에서 벗어났다는 것과, 단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래서 동생은 더더욱 화를 냈고 결국은 나를 그 방으로 뛰어 들어가게 만들었다. 스물 세 살의 나는 엄마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리고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하지만 나는 사춘기 그들에게 아직도 공감하고 그들의 논리를 기억하고 있다.

내 사춘기 시절까지 생각이 다다르고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자, 문득 동생의 팔목이 궁금해진다. 있는 힘껏 쥐었으니 아무리 힘없는 누나라고 해도 아프긴 했을 텐데. 그리고 내가 그렇게 동생을 방으로 밀어 넣은 이유가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서였기 보다는 동생이 누나인 나를 무시하고 나가려고 했던 것, 그리고 동생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걸 깨닫고 나니 울적해졌다.

그건 내가 그렇게나 무시하던 서열싸움이었고, 사춘기 때 그렇게 증오하던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쯤 건넌방에서 동생은, 내가 하던 그대로 지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비웃으며 증오하고 있을 거다. 사춘기 때는 지는 것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그 모습을 비웃었고, 정말로 약하기 때문에 인정하기 못한 거라고 간주했다. 정말 강한 자는 패배도 인정할 줄 아는 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리라 결심했다. 그러면 나의 모습과 위치, 용기를 인정받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보장되지 못한 인정 보다는 억지승리를 택했다. 살아보니 그렇더라고, 패배를 인정하고도 살아남는 멋진 모습을 보지 못해서 두렵다고 말하면 왠지 그건 변명일 것만 같다. 더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앞으로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는 사실이다.

이쪽의 입장도 저쪽의 입장도 이해하고 있는 나로서는, 사춘기보다 더 경계인이 된 느낌이다. 중학교 가정교과서에서 사춘기를 설명하는 특성 중에 하나였다. 사춘기의 청소년은 어른도 아이도 아닌 경계선에 서 있어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사춘기의 나는 어른도 아이도 아니라서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 나는 어떤 편에 목소리를 더해야할지 혼란스럽다.

동생은 방에서 거실로 내려오지 않은 채, 남은 식구들은 저녁을 먹었다. 집에서 큰소리가 난 후라 아빠의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아빠가 큰소리를 내지 않았으니 괜찮다. 나는 혼란스럽고 우울한 기분에 괜히 설거지를 하는 엄마 곁을 왔다갔다, 물을 마시고 있었다.

“재민이, 팔에 피 맺혔더라.”

엄마의 말에 왠지 내 심장에도 손톱자국이 나는 것 같아서 나는 “그러게 누가 덤비래?”라고 한마디 쏘아 붙이고는 방으로 올라왔다. 나는 어쩌면 아직도 사춘기에 가까운가 보다. 그리고 어른이라는 건, 오늘의 나처럼 치사하고 답답하기만 한 게 아니라 지금의 엄마처럼 가장 억울해야하는 입장일지도 모른다.

엄마와 동생이 싸웠는데 내가 몽땅 뒤집어쓴 것 같이 찝찝했다. 어른인 엄마와 사춘기 동생, 둘에게 모두 미안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그렇게 동생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 지긋지긋하다는 그 말을 내 동생이 아닌, 나를 오랫동안 괴롭힌 사춘기와 그 논리에다가 퍼부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은 아주 한참 후에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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