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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09

삶의 단상/살다 2013. 3. 9. 01:50

 무병처럼 병을 앓는다. 순간 자극에 겉잡을 수 없이 퍼져서 약도 없이 시름시름 앓고 나면, 아무렇지 않은듯 그 다음번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제대로 아파보지 못해서 단번에 낫을 수도 없다.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내 운명이라고 신내림처럼 받아드리기엔, 사실은 운명이고 뭐고 그런 건 없다. 내것이 아니다.

 

 오디션 프로의 천재소년,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꿈나무들, 아니 사실 멀리 갈 것 없다. 내 옆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 싸워나가는 친구를 보면 나는 끙끙 앓는다. 대단한 성공이 어느 반열에 들어간 대가는 감히 부럽지도 못하다. 그저 자기 안에 있는 씨앗을 발견하고 하루하루 키워하는 이들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질투가,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이 솓는다. 이룬 것이 없다며 하루를 괴로워하고 남과 다른 경로에 불안해하는 이들의 성장의 열매 하나하나가 멀리 서서 지켜보는 내게는 보이고 발전의 역사가 읽히는 것은 경탄이자 괴롬이다. 나는 그 어느것도 해내지 못했으니까, 나는 그 어느것도 하지 않아서 이루지도 못했으니까.

 

재능없는 열정보다 깜냥없는 욕망이 괴롭다. 무엇하나 시작하고 싶어도 뚜렷한 재능이 없음을 이제는 잘 안다. "타고난 걸 키워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엄마의 말이 사과보다 내 자위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고도 그 말을 버리지 못한다. 존재하지 않던 재능보다 사라진 재능 쪽이 빛나리라 믿는 처참한 변명들이 비참하다. 재능의 영역보다 열정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나의 재능없음은 핑계도 될 수 없다. 내게 없는 것은 믿고 뛰어들고 도전할 수 있는 깜냥이다. 어쩌면 재능이라는 건 그 깜냥을 끌어내기 위한 핑계들이다.

 

최후의 한심함은, 깜냥이 없어 도전조차 하지 못한 내가 안정감조차 가지지 못했다는 것. 최소한 안정된 자리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꿈을 운운하며 한탄하는 그런 한심한 월급쟁이의 클리쉐라도 가졌다면 덜 비참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잡고 한탄하고 싶은 날이다. 누군가가 등떠밀어줬으면 하는 날이다. 누군가가 '무엇'을 해야할지 귀뜸해줬으면 하는 날이다.

여전히 누군가의 핑계만 대고 싶은 한심한 날이다.

 

 

마음이 몹시 흔들리고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욕망들이 고개를 든다. 숨을 크게 들이 마쉬고 머리를 비워서 온통 진흙탕이 되어버린 마음을 잠재운다. 혼탁해진 마음이 가라앉고 나면 바닥에는 고운 흙로 그 위로는 물로 분류되어 맑아진다. 그리고 다음 번에 또 이런 괴로움이 찾아올 때까지는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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