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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나부끼는머리하고

[순간] Singapore flyer



 싱가폴을 여행하고 있을 때, 나는 별로 좋아하는 일행들과 함께하고 있지 않았다. 솔직히 계속해서 짜증이 났고, 짜증이 나고 불편할 때마다 그러는 것처럼 내 목소리 톤은 낮아질대로 낮아지고 말투는 딱딱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짜증이 나 있는 내 모습과 그 모습을 나라고 생각할 일행들이 더 불편해졌다.

 

 소나기가 내렸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기분까지 금방 축축해졌고, 물에 불은 신발이 떨어져버렸다. 급하게 산 슬리퍼를 신고 도로변을 걷다가 만화처럼 뒤로 꽈당 넘어져서 피가 났다. 가깝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행들은 신나게 웃었고, 나도 씩 웃어보이고 다시 길을 앞장 섰다.


 덕 투어를 타고 시내를 돌았다. 얼굴에 살짝 와 닿는 물기가 기분을 달래 주었다. 피곤하고 배고픈 상태로 타워를 올라가서 플라이어 탔다. 그리고 모든 게 다 괜찮아져 버렸다. 짜증나는 일행들고, 더 짜증나는 내 자신도, 끊어진 신발과 넘어진 상처도 압도될 만큼 괜찮아졌다. 나는 플라이어 안에서 일행들과 즐겁게 사진을 찍었고, 환호성을 지르며 감탄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들의 언행도, 이해할 수 없는 연예인 화보 같은 사진 찍기도 다 괜찮아졌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생각보다도 커다란 원통형의 플라이어는 어딘지 천공의 성 라퓨타를 떠올리게 했다. 플라이어 안의 공기가 천천히 흘렀고, 우리는 그 공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잘거렸다. 그렇게 그 시간을 만끽하고 조금 지쳐서 잠잠해질 때 쯤 우리는 플라이어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을 다시 살려낼 수는 없겠지만, 사진을 보면 그 생각이 난다.

짜증이 사그라들게하고, 미움을 압도하는 느리고 온화한 공기. 커다란 기계의 안정감있는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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