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흔한 취업준비생이고 별 볼일 없는 백수인데, 딱히 그럴싸한 이유나 대단한 뜻을 가졌기 때문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고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기관의 해외인턴도 다녀왔는데 그 뒤로 어쩐지 일이 풀리지 않아 무한 대기 상태에 돌입한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취준생. 절망하고 자괴하는 일도 익숙해져 그저 상황을 납득한 채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취직에 힘쓰는 중인데, 이렇게 평범하고 별 볼일 없는 내 생활 중 눈 여겨볼 만한 행보가 하나 있다면 그건 매주 토요일 뮤지컬 수업에 가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날 '생각하는 시민'으로 키우고 싶으셨다는데, 이게 깨어있는 시민을 주창하는 김어준씨가 나오기 20년쯤 전 목표라는 걸 생각하면 꽤 고무적이다. 시민이라면 응당 악기하나 쯤은 다루고 예술을 음미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는지 나는 없는 살림에도 피아노를 체르니 30번까지 배웠고, 생일 선물로 예술의 전당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 1년 정기권 티켓을 선물 받는 어린시절를 보냈다.

 

엄마가 이런 노력을 하면서 간과한 것은 내가 폭발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린 나는 폭발적인 감수성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는데 나의 애청곡은 '엄마 나 살고 싶어요'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노래를 였고, 만화 플란더스의 개의 결말 때문에 대성통곡을 하다 유치원을 결석했고, 좀 더 자라 사춘기가 되서는 두시간짜리 뮤지컬을 보는 내내 우는 통에 직원이 따로 쫓아와 안부를 묻는일도 있었가. 이런 내 감수성은 엄마의 예술 교육과 만나 전혀 엉뚱한 결과를 도출해냈는데, 나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다.

 

철썩같이 그 꿈을 믿고, 삶의 모든 이유를 거기 두며 노력한 시간이 있었다. 예고에 가고 싶었지만 시험도 보지 못했고 연기학원 대문 도 구경한 적이 없었지만 단 한번도 안될 거라 생각하지 않다. 그러다가 결국 연극영화과 입시도 치뤄보지 못하고 대학생이 됐을때, 나는 그제서야 집에 있는 모든 자료를 버리고, 공연장에 발길을 끊고, 내가 정한 다른 방향만을 보고 걸어갔다. 이제까지 눈을 돌리면 꿈이 꺽이고 흔들릴까 두려워했던 것처럼, 이제는 다시 그 길에 눈을 돌렸다 꿈꾸게 될까 두려웠다.

 

가끔씩 티비에 노래나 춤, 그게 무엇이든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선택하고 노력는 또래가 나오면 무병을 앓듯이 몇일을 시달렸다. 그 반짝이는 꿈과 괴롬의 아름다운 감탄했다. 그러면서도 내것이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일이 내겐 너무 괴로웠고, 동시에 눈을 뗄 수 없이 매혹적이었다. 이뤄낸 것이 아니라 이뤄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부아가 났고 온몸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나는 취미로도 그일을 할 수 없었다. 진지하게 하지 않을거라면 하기 싫은 오만이 있었고, 가볍게 시작했다가 다시 온 인생을 걸고 싶어질까봐 겁이났다. 정말 하고 싶었던 옛 소망이 두려워져서 공연 하나 마음 놓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시작은 단순했다. 친한 친구의 뮤지컬 수업에 빈자리가 생겼고 삶이 너무 답답해서 뭐라도 하려던 내게 그 소식이 닿았다. 지르는 마음으로 결심을 한 뒤 입금을 했고 수업에 나갔다. 그동안의 모든 두려움이 허탈할만큼 내 삶은 무너지지 않았고 나는 괴롭지 않았으며 노래는 즐겁고 연기는 행복했다. 내 수준과 실력은 논외로 하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오직 나의 즐거움만을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노래하고 소리내고 움직이고 악보를 읽고 연기하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게다가 내 안에 내가 모르고 있던, 잃어버린 수많은 나 자신이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매일을 새롭게 했다. 

 

오늘 8주차 수업이 지났다. 나는 첫노래 인어공주를 끝내고 이선희의 새로운 노래를 부른다. 녹음을 들어보면 여전히 들어줄만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진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저 지난 주의 나보다 잘하겠다는 내 목표는 성취됐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정체되어 고여있는 나 자신이지만 나는 분명 노력하고 있고 또 성장하고 있다. 내가 가장 하고 싶던 그 분야에서.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던 일을 어떤 형태로나마 시작한 것, 이건 분명히 내 평생 가장 잘한 결심 중 하나가 될거다.   

 

'쓰다 > 쓰자마음의말들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뮤지컬 수업  (0) 2014.06.14
#꿈 - 뉴질랜드에 가다  (0) 2013.11.21
엄마가 사라진다면  (1) 2011.11.20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