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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나부끼는머리하고

첫 여행, 인도


첫 여행을 기억한다. 내 첫 여행지는 인도였다. 


물론 그 여행은 지금처럼 '본격 여행'이나 '혼자 다니는 여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첫 여행지를 인도로 정했다는 건 

내게도 어느 정도 발바닥이 간지러워서 정착할 수 없는 그런 여행자의 기질이 있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해외에 가본 적이 없었고 그다지 결단력 있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런데 인도 여행 이야기를 듣고는 '가고 싶다'가 아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여행을 가야했다. 말 그대로 나는 꼭 그 여행을 가야만 했다.


엄마는 가끔 "산이 부른다."는 말을 했다.


사범대를 수석으로 과대로 졸업한 엄마는 부임이 내정된 학교가 있었다고 했다.

학교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본인이 원해서 간 사범대였다. 

그런데 엄마는 선생이 되는 가는 대신  계속 산에 다녔다고 했다, 할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시집을 간 서른즈음까지. 


겨울산에서 갑작스런 폭설에 위험에 처하거나 혼자서 산행을 하다가 이상한 소문에 휘말리는 건 일도 아니었고,

갑자기 쪽지 한장 남기고 짐을 싸서 지리산 종주를 떠나는 통에 깜짝 놀란 할머니가 엄마를 잡으러 가기도 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산을 잘타거나 했던 것도 아니었다. 

요령이 없어서 자전거도 못타는 우리 엄마가 암벽을 탔다는 이야기를 나는 처음엔 믿을 수 없어했을 정도니까.

아무튼 엄마는 혼자서든 여럿이서든 충동적으로든 계획적으로든 쉴새 없이 산에 다녔다.

내가 엄마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엄마는 "그냥 산이 거기 있고, 산이 나를 불렸다."고 대답했다.

이해할 수 없는, 선문답 같은 대답이었다.


그런데 인도에 가기로 했을 때, 나는  '산이 부른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인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막연한 이미지 뿐이었는데, 인도가 나를 불렀다. 

강력하게 그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웅웅거렸고,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마음이 뛰어서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주에, 난생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리고도 모자란 부분을 빚을 냈다.

나에게 인도는, 그 여행은 그렇게 해서라도 '가야하는 일'이었다.


인도는 매혹적이었다. 다시 없을 만큼, 그리고 다시 가고 싶을 만큼.

그리고 그 여행이 있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늘 생각한다.


남들에게 보여줄만한 굉장한 여행을 하고 많은 여행을 한 건 아니지만, 

여기보다 어딘가를 꿈꾸는 나와 그래서 연명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해준 첫 걸음이었으니까.


내 첫 여행과 첫 여행을 꿈꾸던 나를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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